이미지 크게보기 고 이어령 교수가 타계 3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명상을 하는 모습. 김아타 작가 제공

김아타작가 ‘마지막 사진’ 찍어
靈에서 肉이 떨어져 나간 듯
비공개용 사진 2장 본보에 기증

“선생께서 ‘내 마지막 모습을 찍으세요’라고 하셨던 순간을 무어라 표현하기 힘듭니다. 그런 말씀을 하신 선생도, 나도 한참을 침묵했습니다.”

고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의 요청으로 ‘마지막 사진’을 촬영한 김아타 작가는 27일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선생님 암 투병 시기에 자주 만나서 삶과 죽음, 예술과 종교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눴기 때문에 저를 믿고 청하셨을 겁니다.”

지난 1월 28일, 이 교수와 부인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가 함께 꾸리는 영인문학관에서였다. 사진을 보면 영(靈)에서 육(肉)이 떨어져 나간 듯 깡마른 모습이지만, 세기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 교수의 정신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김 작가는 두 장의 사진을 문화일보에 기증하며, “장례 기간이니 우선 기록용으로 보관하고 나중에 소개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고 이어령 교수가 88세 미수 생신 때 검은 정장을 입고 정면을 응시하며 찍은 사진.

김 작가는 이번에 몇 장의 사진을 함께 제공했다. 이 교수의 미수(米壽·88세) 생일(2020년 12월 29일)을 축하하거나 타계 3개월 전(2021년 11월 4일)에 명상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 등이다. 미수의 이 교수가 검은 정장 차림으로 앞을 직시하는 장면을 8×10인치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으며, “거대한 지성의 실존을 생각했다”고 김 작가는 전했다. 이 교수가 명상에 빠진 모습의 사진은 그가 말년에 이성을 넘어서 영성(靈性)을 지향했던 걸 떠올리게 한다.

이 교수는 말년에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연구와 집필 작업에 몰두했는데, 지인들을 만나면 투병 상황을 숨기지 않고 삶의 끝을 준비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인문학자로서 자신의 병까지도 탐구하며 죽음을 직시하고 정면 승부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작년 12월 펴낸 마지막 저서 ‘메멘토 모리’에서 “암 선고를 받는 순간 지금까지 숨 쉬던 세상의 공기 맛이 달라진다”며 “죽음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것, 죽음의 발견이 생명의 발견임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한편, 이 교수와 가까웠던 예술가들이 그의 말년을 작품으로 기리는 ‘장예전(長藝展)’을 연다.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는 “장례(葬禮)와 발음이 같지만 ‘긴 예술’이란 뜻의 타이틀로 준비하고 있는데, 이르면 한 달 후쯤 개막할 수 있을 듯싶다”고 했다. 이 교수 생전에 준비했으나 가족이 난색을 표해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우환, 김병종, 임옥상, 김아타 등의 작가들이 출품한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