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고인(오른쪽)이 1980년 용인민속촌에서 가족과 찍은 사진.

■ 그립습니다 - 장인 김용윤(1932∼2022)

바다는 표면이 질풍노도와 같이 거센 풍랑이 일고 미친 듯이 파도가 휘몰아쳐도 모두 감싸 안음으로써 고요함을 유지해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바다와 같이 세파의 시달림도 웃음으로 감싸 안으신 분이 장인어른이다. 빚보증을 잘못 서준 것으로 인해 서울에서 일산으로 이사해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2남 6녀의 삶과 행복을 위해 헌신해오신 장인께서 얼마 전 91세로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소천하셨다. 일산에서 처남은 시의원을 지냈고, 처제는 현직 시의원으로 있어 빼곡히 쌓인 조화와 많은 조문객은 장인이 천국으로 가시는 길을 외롭지 않게 해주는 것 같았다.

흔히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말하는 이유는 죽은 뒤에야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장인이 벽제 화장터에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한 시간 남짓한 동안 고인과 오랜 인연을 맺어왔던 분들은 고인과 나눴던 아름다운 추억담을 얘기했다.

장인에 대한 공통적인 평은 ‘착하고 선하게 바른 삶을 살아오셨다’는 것이다. 추억담을 통해 본 장인은 낭만을 좀 아는 인본주의자였다. 초등학생 딸은 아버지 필체가 좋다고 소문났기에 교실에 부착할 한문으로 된 명구를 써달라고 했는데 한글로 적어주시면서 “누구라도 읽어서 공감할 수 있게 한글로 적어야 한다”고 하셨다. 또한 처가는 일산에서 딸 부잣집으로 소문났는데, 한복을 입은 사진 속에서 그중 몇째 딸이 제일 예쁘냐고 여쭈니 장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명답을 하셨다. “너희들 모두가 미스코리아 진(眞)이다. 너는 56년 진이고 너는 58년 진, 진, 진….” 장인의 눈에는 여섯 딸 모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집사람이 어린 시절 몸이 아파 병원으로 가는 길에 장인 등에 업혀 언덕을 넘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버지의 등은 바다와 같이 넓고 아늑해 오래 기억된다고 했다.

내 기억으로 장인은 낭만도 있고 혜안도 있으셨다. 처가에 가면 가끔 하모니카 연주도 하고 뽕짝을 듣고 흥얼거리며 삶의 풍요로움을 즐길 줄 아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셋째 딸과 결혼하겠다고 상견례를 갔을 때다. 장인은 “사관학교 나온 장교로 국가에서 인정한 사람이면 더 볼 것 없다”며 내게 후한 점수를 주셨는데, 그때 장인께 감사함을 느꼈다.

천국으로 가는 문이 좁다고 해도 장인은 반드시 천국으로 가실 것이다. 평소 기독교 신앙심이 두터웠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선의를 베풀어 오셨기 때문이다.

화장이 시작되고 불과 한 시간 여 만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니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깨워주는 것 같다. 현실에 급급해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들이 살아생전에 돈, 돈, 돈 하지만 죽으면 돈이 필요하겠는가. 장인의 평소 유지를 받들어 형제들 간에 다툼 없이 화목하고 인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죽음은 이별이 아니라 천국으로 향하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장인어른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천국에 가셔서 부디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이준희 전 국방대 직무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