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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임영웅 ‘사랑은 늘 도망가’

방송사가 10대 가수를 선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팬들의 엽서와 음반판매, 방송횟수 등을 합산해 집계한다고 공표했지만 공정성에 의혹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었다. 장기집권(?)에 부담을 느꼈는지 자신을 명단에서 빼달라고 요청하는 가수(조용필)도 생겼고 10대(Ten)가 아니라 10대(Teen) 가수라며 세대편향성을 문제 삼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고 그게 가능하지도 않게 됐다. 빅데이터가 답을 해주기 때문이다. ‘조회’라고 하면 교장 선생님 훈화가 생각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동영상 공유플랫폼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2021년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뮤직비디오는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였다. 12월 초 기준으로 유튜브 ‘조회’ 수가 무려 4338만 회를 넘어섰다. ‘쇼 음악중심(MBC)’에선 트로트 곡 사상 처음으로 1위(2021. 3. 20)도 차지했다.

음악은 소리(音)와 즐거움(樂)이 결합한 말이다. 소리는 귀로 듣지만 즐거움은 오감으로 다가온다. 열심히 부르는 걸 넘어 잘 부른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가사의 의미를 잘 살려 온몸으로 전달해야 한다. 임영웅은 고음 부분에서 악을 쓰거나 떼를 쓰는 느낌을 주지 않고도 심금을 울린다. 무엇보다 임영웅은 선곡의 귀재다. 어떤 노래가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될 때 감동을 줄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임영웅이 부른 드라마 OST도 덩달아 화제다. KBS2 주말연속극 ‘신사와 아가씨’에 나오는 ‘사랑은 늘 도망가’(작사 강태규 작곡 홍진영)는 원래 MBC주말드라마 ‘욕망의 불꽃’(2010. 10∼2011. 3) 주제가였다. ‘사랑이란 게 참 쓰린 거더라/ 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더라/ 이별이란 게 참 쉬운 거더라/ 내 잊지 못할 사람아’. 원곡가수는 이문세다. (참고로 작곡가 홍진영은 ‘사랑의 배터리’를 부른 가수와 동명이인이다.) 동일한 노래가 10년의 시차를 두고 다른 방송사의 드라마 OST로 쓰이는 사례가 있었던가. 팬 입장에선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선 ‘이 좋은 노래를 임영웅 거라고 알고 있는 애들이 많더군요. 확 찢어버리고 싶더라고요’(min***)라는 울분(?)도 눈에 띈다. 나이가 들면 팬들이 도망가기도 하는데 이런 끈끈한 팬이 있으니 이문세는 행복한 가수다. ‘그대 사랑받는 난 행복한 사람/ 떠나갈 때 떠나간대도’(이문세 ‘나는 행복한 사람’ 중).

임영웅(1991년생)은 이문세의 아들(종원) 또래다. 1993년 9월 이문세는 8집 타이틀곡 ‘종원에게’를 발표하면서 “아들이 커서 세상을 살다 보면 눈물을 흘릴 날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 아버지로서 미리 만들어 놨다”고 밝혔다.

영웅이란 이름은 홍콩영화 ‘영웅본색’(1986)을 좋아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구하는 영웅, 우리의 영웅’이라는 소망을 담아 지었다고 한다. 오는 26일 저녁 KBS는 송년특집으로 ‘위 아 히어로 임영웅’을 방송한다. 나훈아, 심수봉에 이은 세 번째 단독콘서트다. ‘힘든 시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영웅이라는 취지로 기획했다’니 임영웅은 이름 덕(아빠 덕)도 보는 가수다. 송구영신의 시기인 만큼 임영웅이 공연에서 즐겨 쓰는 인사인 ‘건행’(건강하고 행복하세요)과도 맞아떨어지는 취지다.

영웅이 되면 스토리도 풍성해진다. 어린 시절 유리병에 얼굴이 찍혔지만 수술을 제대로 받지 못했단다. 그때 웃으면서 ‘내 얼굴에 나이키가 있다’고 엄마를 안심시켰다는 깜찍한 일화도 있다.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 영웅에겐 어록이 중요하지 않다. 다만 행로가 그를 증명할 뿐이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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