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조선 16대 왕 인조의 아버지인 추존왕 원종이 잠든 경기 김포시 풍무동 일원 장릉 봉분 앞에서 바라본 인천 검단신도시. 인조 대왕릉인 파주 장릉과 원종의 장릉을 지나 계양산까지 일직선상에 놓인 경관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나 아파트 단지가 계양산을 가려 가치에 대한 재평가 논란이 일고 있다. 박성훈 기자

■ 장릉 앞 아파트 공사 중지사태

‘반경 500m내 20m 초과 건축물은 심의’ 문화재법 불구 세계유산 인근서 버젓이 공사… 인천 서구, 적용 대상지인 검단에 제재없이 허가
문화재청-서구청 ‘규정 인지’ 놓고 해명 엇갈려 입주 예정자만 피해… 건설사 3곳은 알면서도 심의 고의 누락 의혹

김포 = 박성훈 기자

“유네스코 세계유산 앞에 버젓이 아파트를 짓는 건 세계적으로도 유일한 사례가 아닐까요? 반드시 원상복구 해야 합니다” “정부가 규제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상 허가를 받은 아파트 공사가 과연 위법하다고 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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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경기 김포시 풍무동에 자리한 인조의 부모인 원종과 인헌왕후의 무덤인 장릉(章陵·사적 제202호) 방문객들은 봉분 앞에 지어진 정자각(丁字閣·제사를 하는 장소) 앞에 올라서서 인천 검단신도시 쪽을 보기 위해 까치발을 디디며 하나같이 한마디씩 늘어놓았다. 최근 논란이 된 인천 계양산 조망 권역에 공사 중인 장릉 인근 아파트에 대한 궁금증 탓이다. 해당 위치에서는 숲이 우거져 타워크레인의 꼭대기와 건물 일부만 보였다. 정자각보다 높은 곳에 자리한 봉분 곁에 서자 골짜기 사이로 검단신도시에 건립 중인 아파트 단지가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김포시에 사는 배모(48) 씨는 “유적 앞에 문화재 관리 당국의 허락도 없이 아파트를 짓는 게 말이나 되느냐”며 “검단신도시 개발 당시에도 장릉을 훼손할 수 있다는 반대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반면 인천에 사는 윤모(여·63) 씨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잘못도 있는데, 건설사에만 온전히 책임을 물리려 한다면 기업 죽이기밖에 더 되겠냐”며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의 사정을 고려해서라도 허무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창 공사 중인 아파트에 공사중지 명령= 논란의 아파트 건설현장은 김포 장릉과 불과 213m 떨어진 인천 검단신도시 공동주택용지 AA11, AA12-1, AA12-2 세 곳이다. 용지별로 대광건영과 대방건설, 금성백조 등 3개 건설사가 각각 아파트를 건설하고 있다. 대광건영 등 3개 사는 2019년 인천 서구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아 같은 해 11월 공사를 시작해 현재 20∼25층의 최고층 골조공사를 마친 상태다. 하지만 지난 7월 문화재청이 장릉 인근 아파트 건설에 문제가 있다며 이들 건설사가 건립 중인 44개 동의 아파트에 대해 공사 중지명령을 내렸다. 2017년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개정된 문화재 현상변경 허용 기준대로 장릉 반경 500m 내 높이 20m 초과 건축물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개별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3개 단지 모두 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건설사들은 문화재청의 처분에 불복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인용하며 공사가 재개됐다. 그러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장릉 반경 500m에 들어온 19개 동에만 다시 공사중지 명령을 내렸고, 3개 건설사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인천 서부경찰서에 고발했다. 경찰은 현재 고발인과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조만간 피고발인들을 소환해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경찰은 또 19일 인천시 종합건설본부와 서구청 주택과·건축과·문화관광체육과 등에서 압수수색을 벌여 아파트 건설과 관련한 서류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재청-인천시, 규제 놓고 소통 안 돼=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진 데에는 문화재청과 인천시 등 지자체 사이에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김포시 내 장릉 500m 반경 내에서 발급되는 토지이용계획확인원에는 ‘문화재보존영향 검토대상구역’이라는 규제가 명시됐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대광건영 건설 현장인 인천 서구 원당동 32의 1과 대방건설 현장인 원당동 산19의 3, 금성백조 현장 원당동 268에서는 이 같은 규제 내용이 표시되지 않았다. 김포시에는 지난 2017년 문화재 현상변경 허용 기준 개정에 따른 내용을 반영했으나, 서구청은 개정 후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인천도시공사가 2017년 건설사에 토지를 매각할 당시에도 해당 규제는 반영되지 않았다. 당시 공사의 공동주택용지 공급 공고문에는 최고 20∼25층의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었다. 서구청 관계자는 “토지이용규제 기본법상 변경이 있으면 관계 시장·군수·구청장에게 미리 관련 서류나 공고 예정일 등을 통보하게 돼 있는데, 장릉이 있는 김포에는 해당 규제가 통보됐지만 우리 쪽에는 통보 절차가 아예 빠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화재청 관계자는 “토지이용계획확인원에 역사문화환경 보존구역이라는 사실을 반영할 것을 서구청에 수차례 통보한 바 있다”고 밝혀 양측의 해명이 엇갈리고 있다.

◇건설사, 강화된 규제 정말 몰랐나= 건설사 측은 거쳐야 할 문화재 관련 심의를 고의로 누락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공사에 필요한 적법한 행정적 절차를 모두 거쳤고, 2017년 강화된 규제를 인지할 방법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서 이렇게 수익에 큰 영향을 주는 법 개정을 모를 수가 있느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건설사 중에는 국회나 정부의 규제 관련 동향을 파악하는 직원을 따로 두는 곳도 있을 정도로 건축허가와 관련한 법·제도에 민감한 편이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11일 대방건설 등 건설사 3곳으로부터 장릉 역사문화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개선안을 접수한 상태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방건설 등 3개 건설사는 최근 문화재청에 이미 건립된 건물을 허무는 대신 마감재와 색, 옥외 구조물 등을 고치는 선에서 개선대책을 제출했다. 건물 옥상에 기와를 올리는 등의 식으로 경관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전 의원은 “이번 장릉 앞 아파트 건립 사안은 문화재 근간을 지키느냐, 아니면 예외를 두는 선례를 만드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