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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지병한(1916∼1983)·방승묵(1917∼1987)

부모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어느덧 30여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우리 가족은 북한이 공산화되던 1947년 6월, 38선을 넘어 탈북한 실향민입니다. 제 할아버지의 침착한 준비와 계획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형 둘과 갓난아기였던 저까지, 우리 가족은 무사히 남한 땅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 가족의 탈북을 도와줬던 뱃사공이 ‘아기가 울어 위치가 발각돼 몰살당한 경우가 많다’며 아기가 울면 입을 막으라고 하자, 둘째 형이 ‘애기 내뻐리라’고 했답니다. 어머니께서 남한 땅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기도드리며 저에게 젖을 물리셨는데, 강을 넘는 동안 제가 숨도 안 쉬고 왔다며 너 때문에 우리 가족이 모두 무사했다고 자주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서울에 잠시 터를 잡고 고향에 돌아갈 날을 고대하던 중 1951년 1·4 후퇴로 서울이 다시 함락되자 이번에 잡히면 모두 죽는다는 불안감에 대전까지 피란을 오게 됐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평양 제일감리교회의 목사로 재직하셨고, 아버지는 신문사에 근무하셨기에 공산 정권하에 있었다면 우리 가족은 처형됐을 게 분명했을 겁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던 부모님은 대전에 정착한 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중교다리 건너 빈터(현 국제시장)에 가마니를 깔고 노점상을 시작하셨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어머니가 보고 싶어 노점상에 찾아가면 손님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사정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잘 이해되지 않았고,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서운한 생각만 들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어머니만 봐도 마냥 좋았는데, 어머니께서는 무엇 하나라도 더 팔아야 자식들 굶기지 않는다는 절박한 심정에 미처 저를 알아보지 못하신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었던 그때가 부모님께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명절 때면 부모님이 말씀하시던 고향 이야기, 가족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특히 어머니께서 고향에 계시는 외할머니와 형제들의 생사를 걱정하며 눈시울을 붉히시던 모습은 평생 잊히지 않을 겁니다. 살아생전 결국 고향에 가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한 많은 인생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동란과 분단으로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아는 이 하나 없는 대전에서 가족의 새 터전을 만드느라 많은 고초를 겪으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목이 멥니다.

아버지의 엄격한 가정 교육과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오늘의 저를 만들어 주셨고, 특히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봉사하고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말씀,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은혜로 불편함 없이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고 사회에 진출해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저 도움만 받고 살아 계실 때 잘하지 못한 불효가 문득문득 생각납니다. 부모님께 항상 용서를 빕니다.

북녘땅 고향을 다시 보지 못한 제 부모님의 한을 하늘나라에서라도 풀어 드리고자, 남북관계가 복원돼 상호 방문의 기회가 온다면,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에 있는 선조들의 묘소에서 흙을 담아와 부모님 묘소에 뿌려 드리고 싶습니다. 제 생전에 꼭 이뤄지기를 기원합니다. 부모님의 자식이 된 게 저에게는 행운이었고 자랑이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부모님께서 원하셨던 꿈을 이뤄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립습니다.

지정석 대전중구발전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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