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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예다남(예쁜 다리를 가진 남자)’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적이 있습니다. 마른 몸매에 근육 없이 ‘미끈한’ 다리를 보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이런 오명(?)을 벗고 ‘강한 남자’의 표본 같은 근육을 만들기 위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헬스장을 등록했습니다. 나름 굳은 각오로 시작했는데 웬걸, 석 달도 채 못 다니고 관뒀습니다. 혼자 땀 흘리며 아령을 들었다 놨다 하는 동작에 영 흥미가 안 생기더군요. 그 이후에도 몇 번 피트니스센터를 들락날락했지만 ‘작심 3개월’의 패턴은 늘 반복됐습니다.

“언제쯤 덩치를 키우고 ‘초콜릿 복근’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독일 역사학자 위르겐 마르추카트가 쓴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헬스장과 필라테스·요가 학원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현대사회를 제목 그대로 ‘피트니스(fitness)의 시대’라고 규정합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자신을 가꾸는 모습이 ‘핏(fit)’한 몸매에 대한 열풍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것이지요.

건강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 같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책은 ‘피트니스 전성시대’에서 성공과 성취를 제1 명제로 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읽어냅니다. 근대사회가 끊임없는 ‘최적화’와 ‘혁신’을 요구하듯, 피트니스 시대는 “핏한 몸을 통해 자아를 최적화하라고 요구한다”는 겁니다. ‘피트니스 열풍’은 1970년대 이후 본격화했는데 이 시기가 신자유주의 시대와 일치하는 건 우연이 아니라는 설명도 곁들입니다.

저자는 이런 신자유주의 논리가 숨은 ‘몸짱 열풍’이 또 다른 배제와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몸매가 별로라고 법적·제도적 차별을 당할 일은 없지만, 외모를 중요한 ‘상징자본’으로 여기는 사회는 ‘핏하지 않은 몸’에 이미 실패의 낙인을 찍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저자는 “한쪽에 ‘피트니스’가 있다면 다른 한편엔 ‘패트니스(fatness)’가 있다”며 “유별나게 뚱뚱한 사람은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는 데 실패한 자로 간주된다”고 지적합니다.

언젠가는 또 헬스장을 찾겠지만, 이제 생각을 바꿔보려 합니다. ‘초콜릿 복근’을 부러워하지 않고 내 몸을 긍정하면서도 지금 당장 건강해지기 위한 나만의 방식을 찾아보겠다고 다짐합니다. 잘 먹고, 잘 쉬고, 틈틈이 걷고 달리며 말이지요. 책 메시지처럼 ‘내 몸과 건강’을 꼭 사회가 기대하는 표준에 맞출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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