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전 지구적 기후변화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에 대한 피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왼쪽부터 시곗바늘 방향으로 집중호우로 무너져내린 공주 공산성 성곽, 해수면 상승과 폭우로 물에 잠긴 이탈리아 베네치아, 이상 가뭄으로 인한 대형산불로 몸살을 앓는 그리스, 집중호우로 무너진 안동 하회마을 고택 담장, 흰개미 피해를 본 덕수궁 중화전의 모습. 자료사진

■ 기후변화와 문화재 관리

내달 9일 경주 학술 심포지엄
기후변화·문화재관리 등 논의

2019년 ~ 올해 문화재 풍수해
공산성 붕괴·안동 섶다리 유실
지난해 105건 등 219건 달해
팔만대장경에 곰팡이 필 수도

연천 은대리 습지 육지화 진행
오죽헌 매화나무 생육 악화 등
천연기념물 피해도 속속 발견

伊·英·獨 해수면 상승에 침수
그리스·터키선 대형산불 몸살
“체계적 연구·통합적 대응 시급”

다음 달 9일 신라 천년고도 경주에서 의미심장한 학술 심포지엄이 열린다.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문화재방재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심포지엄의 주제는 ‘기후변화와 문화재’.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뿐 아니라 환경 및 문화재 관련 학계, 연구소, 기업체 전문가들이 모여 기후변화가 유형문화재와 천연기념물 등 우리 문화재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보고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기후변화와 문화재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논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은 이례적인데, 이는 문화재 역시 이제는 전 지구적 현상이 된 기후변화의 위험에 노출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후변화, 문화재·천연기념물도 위협 = 31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최근까지 호우와 태풍, 폭설, 강풍, 해빙 등 풍수해로 피해를 본 문화재(유형문화재·천연기념물 등)는 총 219건이다. 2019년 85건이었던 피해는 2020년 105건으로 늘었고, 올해에는 8월 말 현재까지 29건이 발생했다. 나뭇가지가 꺾이고 부러지거나 기와, 건물 창호 등이 파손되는 비교적 가벼운 피해도 있지만 성곽이나 석축, 다리, 건물 담장과 벽 등이 무너지는 큰 피해도 적지 않다. 집중호우가 잦았던 2020년 한 해만 해도 공주 공산성 성곽 붕괴, 안동 하회마을 엄행당 등 고택 담장 파손, 병산서원 기와와 도산서원 지붕 파손, 논산 원목다리와 미내다리 침수, 안동 섶다리 유실 등 큰 피해가 이어졌다.

목조문화재는 흰개미를 비롯한 병충해 피해를 보는 사례가 갈수록 광범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이 국보·보물·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전국 목조건물 312건의 흰개미 피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지난 2011~2015년 1차 조사 때 218건이었던 피해 사례가 2016~2018년 2차 조사 때에는 275건으로 늘었다. 조사 대상 국보·보물 157건 가운데 두 차례의 조사에서 흰개미 피해가 발견되지 않은 사례는 수원 팔달문과 안동 봉정사 고금당,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 등 손에 꼽을 정도에 그쳤다.

천연기념물 피해 사례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해송이 담홍말미잘이 달라붙는 바람에 집단 폐사했는가 하면 연천 은대리 물거미 서식지는 가뭄으로 인해 습지의 육지화가 진행됐다.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의 구상나무는 강수량 증가와 일조시간 감소 등으로 고사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강릉 오죽헌의 매화나무 율곡매는 기온 상승과 잦은 강우 등으로 생육 상태가 악화됐다. 홍조류가 퇴적돼 만들어진 제주 우도 홍조단괴 해빈은 해수면 상승으로 폭이 줄어들고 있고,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주변 해역의 사람 및 동물 발자국 화석 산지도 해수면 상승 등으로 소실되고 있다.

이들 피해가 모두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그렇다”고 단정하지 못한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지구 온난화가 과거 지구 생태사의 궤적에서 벗어난 특이한 현상인지를 두고도 논란이 이어지는 데다 지구 온난화 이전에도 일반적인 풍화와 침식, 부식 등에 의한 피해는 있었다. 그럼에도, 관계 당국과 전문가들이 기후변화의 위협에 주목하는 이유는 최근의 피해 사례가 대부분 고온다습을 특징으로 하는 생태계의 아열대화와 연결되며, 피해 사례와 정도가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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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세계유산도 몸살 … “체계적 연구와 대응 시급” =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로 유네스코 세계유산들도 몸살을 앓고 있다. 유네스코는 1979년부터 10년 단위로 해수면 변화와 사막화, 가뭄, 홍수, 태풍, 기온 변화 등 기후변화로 인한 위협 요소로 세계유산이 피해를 본 사례를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사막화와 홍수로 인한 피해 사례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해수면 상승과 집중호우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영국 해안 유적 침수로 이어졌고, 독일 드레스덴과 영국 런던 등도 침수 피해를 당했다. 페루 찬찬 유적은 엘니뇨에 따른 가뭄 피해와 집중호우 피해를 모두 입었다. 최근 그리스, 이탈리아, 러시아, 터키 등 유럽과 호주, 미국 등의 대형산불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후변화라는 급격하고 광범위한 격변에 맞춰 문화재 및 자연유산의 관리·보전 대책을 새롭게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를 중심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관련 연구와 정책 및 기술 개발, 기후변화 모니터링 플랫폼 구축, 국제 연대 등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아직 피해가 발생하면 복구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며 “체계적 연구와 통합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후변화 양상, 또 기후변화가 개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복잡한 까닭이다.

건축문화재 전문가인 김영재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해수면이 올라갔을 때 먼저 영향을 받는 곳이 어딘지 알아야 재난을 예방할 수 있듯이, 다양한 기후변화 양상에 맞춘 ‘예측지도’와 손상함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재해정보시스템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고 위험 대응과 완화를 위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존과학 전문가인 같은 대학의 정용재 교수도 “댐 하나가 주변 습도를 높여 흰개미 개체 수를 늘리고, 온도와 습도의 작은 변화가 고분의 벽화에 곰팡이가 피게 할 정도로 기후변화가 문화유산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며 체계적인 연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어떠한 전기 설비나 화학물질 사용 없이도 800년 동안 곰팡이 없이 잘 보존돼 왔지만, 지금까지의 기후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