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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고민

저는 항상 베풀기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아요. 장녀로서 어릴 적부터 동생들에게 매 순간 양보하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먼저 챙기는 습관이 생겼죠. 늘 먼저 챙기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이었어요. 대학원을 포기하고 일찍 취직해 퇴근 후에는 재테크 공부를 했어요. 덕분에 제집도 마련하고, 동생들 결혼할 때도 부모님 대신 돈을 보태줬어요. 정작 저는 늦게 결혼해 시댁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남들을 챙기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특히 동서나 동생, 회사의 후배들은 저보다 훨씬 조그만 일을 해도 칭찬과 인정을 받더라고요. 불행하게 산 것은 아니지만, 제가 남들에게 베푸는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매번 반복되니 때로는 억울합니다. 다들 저에게 기댑니다. 이런 것을 바꿀 수 없을까요?

A : 인간관계 정리정돈 필요…서운한 마음 한번쯤 표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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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루션

베풀 수 있는 것도 능력이지만, 인간관계도 정리가 필요합니다. 남에게 베풀고 먼저 챙기는 습관을 통째로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그런 배려는 아무나 할 수 없고, 본인의 매력이기도 하니 굳이 바꿔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렇지만 남에게 정성을 쏟으며 ‘상대가 알아줄까?’ 또는 ‘그래야 관계가 유지된다’는 느낌은 좀 서글플 수도 있지요. 다른 사람들은 별 노력 없이 인정받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쉽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각자의 방식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 정리가 관계를 끊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기회를 통한 정리가 필요합니다. 각자 상황이 다르므로 준 만큼 그대로 받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고마워하는 마음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서운한 마음을 한 번쯤 표현해보면 어떨까요? 티를 내지 않으면 모르는 둔한 사람들도 있고, 칭찬을 어색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왜 내가 베푼 것을 갚지 않느냐고 화를 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제까지 내가 했으니 이번에는 좀 해주면 안 될까?”라고 부탁해보거나, ‘나도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런 도전이 쉽지는 않습니다.

베풀기만 하는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 마음을 표현할 때 구별이 가능하지, 혼자 과거를 곱씹기만 해서는 상대의 의도를 알기가 어려워요.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기애성 인격 성향(Narcissistic personality trait)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이제껏 베푼 걸 아까워하면 관계를 정리하기 어렵겠지요.

좀 더 주는 입장이 더 지칠 수는 있겠지만, 불행한 것만은 아닙니다. J D 밴스의 ‘힐빌리의 노래’에 나오는 말,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주는 입장이 된 사람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을 기억해보면 어떨까요.

하주원 원장 연세숲정신건강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