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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수(1936∼2011)

8월 무더위에 아스팔트는 펄펄 끓는다. 끓는 도로 위를 달리다 사거리에서 정지 신호에 멈춘다. 도로 위로 아지랑이가 보인다. 저 아지랑이는 나를 엄마에게로 인도한다. 나의 엄마는 키 155㎝ 남짓에 몸무게 38㎏이다. 한여름이 되면 몸무게가 35㎏까지 내려간다. 땀을 뻘뻘 흘리진 않는데 기운이 없다며 죽지 않을 만큼만 음식을 겨우겨우 삼키신다.

자식들은 자기 밥벌이가 바빠서 엄마에게 손주를 맡기고 일터로 향한다. 힘들다는 내색 한번 하지 않으시고 그 손주들을 기꺼이 끌어안으신다. 하루는 손주를 등에 업고 기우뚱했는지 계단에 부딪혀 정강이가 속살이 보일 정도로 패었다. 혹여 손주 머리라도 다칠까 봐 계단을 두 다리로 괴고 버티셨단다. 살을 깁는 응급치료만 겨우 한 채 곧장 집으로 오셔서 또 저녁을 하며 손주를 돌보셔야 했다. 퇴근하고 아이를 데리러 온 언니는 엄마에게 “날 덥다고 밥 거르지 말고 잘 좀 챙겨 드세요”라며 걱정 반 원망 반 섞인 말투로 퉁명스레 얘기하고는 돌아갔다. 그런 언니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엄마의 뒷모습은 중죄를 저지른 죄인의 뒷모습이었다.

당신이 더 크게 넘어졌으면 손주 녀석 어떻게 됐을 거라며, 괜히 일을 만들어 언니를 맘 안 좋게 보냈다고 자책하는 엄마에게 “자기 자식은 자기가 키우라고 하세요!”라고 나는 버럭 화를 내버렸다.

그때 내 나이 23살, 연애하기 바빠서 엄마에게 학교에서 공부한다느니 모임이 있다느니 거짓말만 하는 철부지 막내딸이었다. 그렇게 살아오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나 또한 필요할 때 아이 좀 봐달라,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하며 엄마를 또 괴롭혔다. 세월은 멈춤 없이 흘러가고 엄마의 상처도 걱정들도 함께 묻어 흘러가던 어느 날. 지금처럼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 필 시기 엄마는 기운이 없으시다며 병원에 입원하셨고, 보름 만에 퇴원하신 뒤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렇게 엄마를 보내드리고 내 아이를 키우며 엉엉 소리 내어 우는 날이 많아졌다. 너무 힘든 날, 또 너무 기쁜 날 엄마가 어김없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너무 늦게 알게 된 엄마의 고귀하고 숭고한 삶과 사랑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얘기하고, 서운하셨을 마음 조금이라도 헤아려 드릴 수 있었을 텐데….

세월은 참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그 옛날엔 저 아지랑이를 보면 엄마의 눈물로도 보였고, 힘없는 엄마의 모습으로도 보였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지랑이는 엄마의 미소로, 다 괜찮다는 엄마의 손짓으로 보인다.

세 자매는 모두 엄마가 됐고, 우리의 엄마는 그 자리에 없다. 모이면 눈물 바람이던 세 자매는 이제야 엄마의 기도가 뭔지를 알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너무 늦었지만, 엄마에게 ‘세상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했습니다’라고 있는 힘을 다해 말해주고 싶다. 신호가 바뀌고 뒤 차 경적에 번쩍 정신이 든다. 번잡한 사거리를 지나고 나서야 긴 한숨을 쉬고는 마음속으로 크게 크게 외쳐본다. ‘엄마, 정말 정말 사랑해! 그곳에서는 행복하기야∼ 꼭!’

막내딸 조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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