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젓가락 포장지 씌워 번 돈으로 고등어 반찬해주시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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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미(1919~1994)

30년 전 12월 어느 날, 병석에 계신 할머니께서는 나와 나의 집사람 손을 꼭 잡고 ‘죽기 전에 너 사는 데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응, 할매, 꼭 모시고 갈 테니까 빨리 쾌차하세요.” 이렇게 대답해 드리고는 살아계신 할머니를 뵙지 못했다. 그로부터 보름 후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할머니의 그 말씀은 내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 되고 말았다.

할머니는 내 삶 속에 있는 천둥이자 번개이고, 바람이자 소쩍새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가 뭔가를 해드릴 시간도 주시지 않고 더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서인지 급하게 돌아가셔 버렸다. 그렇게 빨리 돌아가신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젊은 날 허송세월한 나의 삶이 후회스럽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다.

나는 시골 농촌에서 6남매 중 장남이자 장손으로 태어났다. 농촌에서 자란 사람들은 할머니가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안다. 논일과 밭일을 나가고, 길쌈도 하고 누에도 치고 해야 했던 엄마들을 대신해서 할머니의 품은 엄마 이상의 안식처였다. 더구나 동생이 줄줄이 넷이나 있는 나에게 엄마는 이미 동생들의 몫이어서 철이 들기 시작한 이래 자연스레 나는 할머니 품에서 잤고 할머니의 사랑으로 자랐다. 더구나 장손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으랴.

할머니의 보살핌은 생각만 해도 눈물겹다. 내가 자란 동네는 워낙 시골이어서 중학교가 없어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후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할머니는 늘 나의 뒷바라지를 위해 예천읍으로, 대구로, 서울로 따라다니며 갖은 고생을 하셨다. 대구에서의 고등학교 3년은 특히 못 잊을 고맙고 그리운 시간이다. 10·26사태가 일어났던 1979년 그해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시골 촌놈에게 대구라는 ‘큰 도시’가 주는 충격은 늘 설레고 신선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지만, 놀 거리 풍부한 도시를 즐기느라 도시 친구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려 할머니께 걱정도 참 많이 끼쳐 드렸다.

그러나 그런 손자를 위해 할머니는 늘 나무젓가락을 싸는 돈벌이를 하셨다. 그 당시에는 중국집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나무젓가락인데 젓가락 하나하나 얇은 종이로 일일이 감아서 싸야 했다. 젓가락 100개가 든 뭉치 50개 정도를 싸면 500원 정도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걸 싸느라 할머니의 왼손 엄지와 검지는 지문이 안 보일 정도로 반들반들해졌다. 할머니는 종일 젓가락을 싸서 번 돈으로 손자 고등어 반찬을 해주셨다. 그때 고등어 한 손이 500원 정도여서 할머니께서 종일 젓가락을 싸면 고등어 한 손을 살 수 있었고 나는 고마운 마음에 한 끼에 고등어구이를 한 마리씩 먹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할머니께서 나무젓가락을 싸서 번 돈으로 고등어 반찬을 해주시던 그때로부터 40여 년이 지나 이제 내 머리카락도 희끗희끗해졌지만, 여전히 나의 최고 반찬은 고등어구이이다. 고등어구이는 살아계실 적 할머니의 손자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자 할머니에 대한 나의 애틋한 그리움이다.

손자 안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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