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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청 키다리 아저씨

2005년 8월 경기 안산시청 지식산업과로 첫 발령이 났다.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었기에 뭐든 겁났다. 한동안은 사무실 전화벨이 울려도 받을 자신이 없었고, 겁난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정작 일하는 것은 별로 없는데, 잔뜩 긴장한 채로 서울 집에서 출퇴근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발령 후 6개월쯤 지났을 무렵 인사이동이 있었다. 키가 무척 큰 주사님이 우리 과로 새로 오셨다. 이분이 바로 나의 ‘키다리 아저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다리 아저씨는 실수도 실패도 상처도 싫다는 마음으로 두 손을 불끈 쥐고 출근하는 나를 바로 알아보셨다.

하루하루 업무는 물론이고 사람을 대하는 자세라든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등 해줄 수 있는 조언은 하고 또 해주셨다. 모든 것이 서툴렀던 당시엔 도움을 받으면 고맙기보다 송구할 뿐이었다.

도와달라는 말, 힘들다는 내색은 상대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이 컸다. 여기는 가정도, 학교도 아닌 사회니까. 사회생활은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으니까.

지출 서류 하나 만드는 데도 검수 조서니 품의니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이 수두룩했다. 회계과에서 계약 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었던 키다리 아저씨는 설명도 참 잘해 주셨다.

“원칙은 저렇고, 서류 순서는 이렇게 하면 돼. 민원인이 화가 많이 나서 찾아왔을 때는 일단 자리를 권하고, 뜨거운 차를 대접해봐. 그러면 차를 마시면서 조금씩 화가 누그러지니까. 도움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해.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고, 잘못한 건 언제든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하니까.”

커피믹스 한 잔을 타 줄 때도 “이 커피는 특별히 좋은 사무실 정수기 물을 적당한 비율로 정성스럽게 탔으니까 마셔 봐”라고 하셨다.

어린 나는 그런 말들이 다 농담인 줄로만 알았다. 지금은 안다. 그것이 쑥스럽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그분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2013년 어느덧 아이 엄마가 되고, 키다리 아저씨께 두서없는 전화를 드렸다. 연고 없는 안산에서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 하는 것이 지쳐 친정 가까이로 전출 가고 싶다고 했더니 키다리 아저씨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같은 조직에서 함께 근무하면 나야 참 좋지만, 다른 이유도 아니고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들어서 가겠다는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 이야기해 줘.”

지난해 가을, 몇 년 만에 키다리 아저씨를 찾아뵐 기회가 있었다. 안산시청에서 서툴고 어리숙한 나를 응원해주던 그분은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반겨주셨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나도 2005년 처음 출근했던 당시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연배가 됐다. 지금 이곳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 있을까. 여전히 어리숙하고 서툰 내게 키다리 아저씨는 언제 떠올려도 마음 따뜻해지는 고마운 분이다.

이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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