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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갑출(1936∼2019)

마흔셋에 엄마가 된 저는, 마흔셋부터 ‘손주 육아’를 하셨던 외할머니 생각을 자주 합니다. 동생이 생기며 엄마는 지옥 같은 입덧을 시작했고, 백일이 갓 지난 저는 외갓집에 맡겨졌습니다. 당시 그곳엔 고등학생 이모, 그리고 중학생 외삼촌이 둘이나 있었는데도 외할머니께선 선뜻 저를 품어주셨습니다.

당신은 외손녀를 위해 시골장까지 가셔서 쌀과 잡곡을 사와, 그것으로 고두밥을 쪄 말린 뒤 갈아 우유에 섞어 이유식을 해먹이셨답니다. 시판 쌀가루와 믹서기를 활용해 이유식을 만드는 것도 고된 저로선 엄두도 못 낼 일입니다. 외할머니는 “우리 강생이, 강생이”라고 하시며 참 지극정성이셨죠.

외할머니는 합천 부잣집 막내딸이었습니다. 친정 사랑채엔 많은 과객이 들러 식사도 하고 쉬어가곤 했는데, 그 ‘단골손님’ 중 한 분이 바로 외할아버지였습니다. 외증조할아버지께선 인물 좋고 성실한 공무원이었던 외할아버지를 눈여겨보시고 막내딸과 연을 맺어주셨다지요. 진주로 간 ‘새댁’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곧 마산으로 발령 나면서 홀로 시부모님을 모시며 논·밭농사를 지어 그야말로 억척스럽게 살림을 일구셨습니다. 손재주도 좋으셔서, 동네 사람들 결혼 한복이며 상복·수의까지 손수 만들어주실 정도였지요. 그뿐 아니라 구들장 등 집 안 수리도 뚝딱뚝딱 도맡아 하신, 여자 ‘맥가이버’였습니다.

외할머니는 막내 외삼촌을 낳으신 뒤 외할아버지가 계신 마산으로 거처를 옮기셨고, 이후 ‘뜨개질 장인’의 면모를 발휘하셨습니다. 여름엔 면실로, 겨울엔 울실로 사계절 온 가족을 위해 카디건이며 조끼며 갖가지 옷에다 심지어 방석 같은 소품까지 떠주셨지요. 솜씨가 소문이 나서 털실가게 ‘특급 알바’로 일하시기도 했습니다. 일본어를 좀 하셨던 터라, 의뢰를 받으면 일본 자수 책까지 보며 옷을 짜서 납품하셨다고 합니다.

하회탈 미소의 외할머니가 딱 두 번 정말 슬퍼 보였던 순간이 있습니다. 25년여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작은 외삼촌을 잃으셨을 때입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일을 겪으셨지만, 외할머니는 참 꿋꿋하고 밝게 주변까지 살뜰히 돌보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외할머니를 뵌 건 2018년 여름이었고, 그로부터 반년쯤 뒤 하늘로 떠나셨습니다. 당시 저는 외국에 거주하고 있었고 임신 초기였습니다. 친정엄마는 제가 충격받을까 봐 그 사실을 감추다, 안정기가 넘어서자 비로소 말씀해주셨지요. 출산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저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계신 추모공원을 찾아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저 이후로도 친손주 넷을 더 거두시며 그야말로 쉼없는 육아로 달린 당신, ‘역할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정작 본인은 가꿀 여유가 없어 늘 짧은 파마머리에 통바지 차림이셨겠죠. 내색은 않으셨지만, 가족을 위해 희생하신 삶이 얼마나 힘겹고 고달프셨을지 이제야 짐작이 갑니다.

부디 하늘에선 스스로만 돌보며 평안하시길 기도드려요. 당신이 그러셨듯 저 또한 제 아들을 향해 항상 웃어주고 격려하며 사랑받는다고 느낄 수 있게 할게요. 우리 외할머니, 정말로 감사하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외손녀 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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