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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식품표시법’ 관련규정 개정… 2023년 시행

과학적 실험통해 제품별 설정
냉장 등 보관기준 준수해야
멀쩡한 음식 폐기 막는 효과
OECD 37개국선 이미 적용

국내 식품폐기량 연간 548만t
온실가스 6%는 음식쓰레기탓
폐기줄여야 탄소 제로에 도움

냉장고 속에 유통기한이 지난 달걀과 두부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먹어도 될까. 이 경우 대부분 소비자는 식품이 멀쩡해도 버리기 십상이다. 유통기한을 식품 폐기 시점으로 인식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오는 2023년부터는 냉장보관 원칙만 잘 지켰다면 달걀과 두부를 유통기한이 지났어도 섭취할 수 있게 된다. 유통기한보다 기간이 늘어난 ‘소비기한 표시제’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매년 버려지는 식품 폐기량을 줄이기 위해 이 같은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식약처는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탄소중립 시대에 대비해 식품·의약품 안전관리 체계 강화정책 중 하나로 식품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을 추진한다. 우선 식품에 현행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시하도록 식품표시광고법 등 관련 규정을 개정할 방침이다. 이는 해외 규제와의 조화, 소비자 혼란 방지, 식품 폐기 감소 등을 위해서다. 현재 유럽연합(EU),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아프리카 등 대부분 국가에서도 소비기한을 도입하고 있다는 게 식약처 설명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행 식품의 날짜표시 종류에는 유통기한, 소비기한, 품질유지기한, 제조일자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소비기한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표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유통기한은 제품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유통·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을 의미한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식품 대부분에 적용된다. 유통기한은 식품의 품질 변화 시점을 기준으로 60∼70% 정도 앞선 기간으로 설정한다.

소비기한은 규정된 보관 조건에서 식품을 소비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이다. 통상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기간이 길다. 소비기한은 80∼90% 앞선 수준에서 설정하므로 유통기한보다 늘어나는 것이다. 이는 영국, 일본, 호주 등 해외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표시 제도다.

제조일자와 품질유지기한은 일반적으로 장기간 보관해도 변질되거나 부패될 우려가 적은 식품에 사용된다. 제조일자는 일반적으로 제조 가공이 끝난 시점을 의미한다. 주로 설탕, 소금, 소주, 빙과 등 식품에 표시한다. 품질유지기한은 제품 고유의 품질이 유지되는 기간으로 당류, 장류, 절임류 등에 적용된다.

정부가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하려는 주된 이유는 정확한 식품 소비를 유도해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멀쩡한 음식을 버리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국내 식품폐기량은 연간 548만t, 처리비용은 1조96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축구장 100개에 달하는 면적이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분석 결과를 보면 2018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6%는 식품 생산이 원인이다. 6%는 음식 쓰레기로 인해 발생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하면 식품 폐기량과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지속 가능한 지구 환경 보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한 식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소비자가 자의적으로 소비 가능 기한을 판단해 식중독 등 사고를 일으킬 우려를 줄일 수 있다. 유통기한보다는 실제 소비 시점을 기준으로 표기하는 게 정확하고 안전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업계는 소비기한 표시제가 도입될 경우, 소비자와 산업체 양측 모두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식품안전정보원에 따르면 식품폐기 감소로 연간 소비자는 8860억 원, 산업체는 260억 원의 편익이 발생한다. 일회성이 아닌 10년간 발생할 편익(사회적 할인율 4.5% 적용)을 따져보면 소비자 7조3000억 원, 산업체 2200억 원에 달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이 감소하는 사회적 편익도 연간 165억 원가량 추가로 발생했다.

소비기한은 과학적인 설정 실험 등을 통한 안전계수를 적용해 설정된다. 여기에는 제품별 원료, 제조공정, 포장재, 보관온도 등을 고려한 과학적 근거가 적용된다. 우선 원재료와 제품 배합 등 제품 내부 요인을 분석한 후 공정, 위생, 포장, 저장, 유통 등 제품 외부 요인을 분석한다. 이후 관능검사와 미생물·이화학·물리적 지표 측정실험 등 과학적인 설정 실험을 통해 제품 유통 중 안전성과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기간으로 설정한다. 식약처는 이 같은 방식을 통해 소비기한 도입 시 안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킨다는 방침이다.

소비기한은 유통기한에 비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통기한 표시에서 최종 소비가 가능한 기간으로 표기 방식이 변화되면 소비자들이 실제 표시되는 기간이 늘어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식품 변질 등을 우려할 수 있다.

소비기한 설정 방식에 따르면 생면의 경우 품질이 유지되는 기간이 10일이라면 유통기한은 6∼7일, 소비기한은 8∼9일로 결정된다. 제품별 정확한 기한산정은 설정 실험 원칙에 따라 정해진다.

다만 식품 상태를 안전하게 보존하려면 유통기한 또는 소비기한 내 제품의 특성에 맞게 설정된 보관기준(냉장·냉동·실온)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냉장제품의 경우 0∼10도 온도 기준을 벗어났거나 제품이 개봉된 채로 보관됐다면 해당 기간까지 제품이 안전하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