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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곡 가장 많이 낸 김희갑·양인자 부부

대한민국에서 히트곡이 가장 많은 가수는 누굴까. 섣불리 답했다가는 곤란해질 수도 있다. 히트곡의 기준이 뭐냐, 기간이 얼마냐에 따라 여러 가수의 이름이 오르내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조용한 팬클럽이 잠자는 사자보다 무서울 수 있다. 하지만 장르 불문하고 대한민국에서 히트곡을 가장 많이 낸 부부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을 성싶다. 한 집안에서 아내(양인자·사진 오른쪽)가 작사하고 남편(김희갑·왼쪽)이 작곡한 노래가 무려 400여 곡이다. 자주 불리는 곡만 추려도 ‘가요무대’ ‘불후의 명곡’ 특집편성이 언제라도 가능하다.

조용필의 ‘큐’ ‘그 겨울의 찻집’ ‘바람이 전하는 말’ ‘킬리만자로의 표범’, 김국환의 ‘타타타’,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 거기에 뮤지컬 ‘명성황후’에 이르기까지 이 부부의 창작목록은 다양하고 방대하다. 만약 부부에게 대표곡이 뭐냐고 묻는다면 서로 마주 보다가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 “당신이 내 생애 최고의 히트작이야.” 참고로 이 말은 외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Music and Lyrics·2007)에서 앨릭스 플레처(휴 그랜트)가 한 명대사다.

가수와 곡목은 유명한데 작사가와 작곡가는 왜 인지도가 그만 못할까. 가수는 눈에 보이고 음악은 귀에 들리기 때문이다. 부르지 않는 노래는 악보에 불과하며 악보는 무대에서 연주될 때 생명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노래 하나가 팬들을 만나는 여정에는 마치 밥 한 그릇이 식탁까지 이르는 길 못지않게 많은 땀방울이 깃들어있다. ‘이 좋은 노래를 누가 만들었지’라고 창작자에게 감사하며 감상하지 않는다고 나무랄 순 없다. 마치 밥을 먹으면서 모내기, 김매기와 추수의 노동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농부가 서운해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이미지 크게보기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한때 김희갑은 별명이 ‘주제가’였다. 그만큼 드라마 OST를 많이 작곡했다. 두 사람이 만난 것도 그런 과정에서였다. 여고생 소설가로 일찍부터 주목받은 양인자는 서른 즈음에 드라마 작가로 변신했는데 데뷔작이 ‘부부만세’(MBC·1974)였다. 부부가 만나서 만세를 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이란 길지가 않더라/ 영원하지도 않더라’(‘립스틱 짙게 바르고’ 중). 지혜의 눈으로 보면 과거는 실패의 경험이 아니라 교훈의 역사다. 재혼부부가 보여준 협력과 존중은 어쩌면 최고의 복이 전화위복임을 증명한 사례일 수도 있겠다.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중략)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그 겨울의 찻집’을 지나 봄과 여름, 가을 언덕에서 두 사람이 창조한 가요 역시 농축된 드라마였다. 가사 마디마디에 사랑과 운명이 씨줄 날줄처럼 얽혀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타타타’ 중). 겉으로 순응인 듯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적응이다.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타타타’ 중). 위로 삼아 누구는 걱정하지 말라 수월히 권하지만 실은 걱정조차 삶의 일부라는 긍정의 무게가 ‘타타타’에 담겨있다.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의 주제가는 ‘사랑을 찾아가는 길’(Way back into love)이다. 사랑을 찾아가는 길에서 부부는 어떤 대화를 나누며 살까. ‘착한 당신 속상해도 인생이란 따뜻한 거야’(‘바람이 전하는 말’ 중). 김희갑 작곡인생 40년 헌정공연(2006) 제목이 ‘그대 커다란 나무’였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의 삶을 거부하고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킬리만자로의 표범’ 중)가 되는 건 간단치 않은 내공의 결실이다. 노래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그 숲에서 부는 바람으로 음악동네가 시원한 그늘을 확보한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