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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경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볼까. 거울에 비춰본다. 점원이 다가온다. ‘손님이 입으실 건가요?’ 그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이 든다. ‘너무 과한가요?’ ‘그거보단 이게 더 어울리실 것 같은데요.’ 다른 가게로 간다. 선수를 친다. ‘다음 주가 아들 생일이라.’ 옛날 부모들은 꽉 끼는 옷보다 조금 헐렁한 옷을 골랐다. 아이가 클 걸 알기 때문이다. 난 다 커버린 걸까. 아니면 철이 없는 걸까.

‘의상철학’이라는 책이 있는데 영국의 문필가 토머스 칼라일(1795∼1881)이 썼다. 우주를 하나의 의상으로 보고 ‘새로운 신앙의 옷’을 제안했다. 내게도 옷에 관한 작은 신념(?)이 있다. 옳은 옷은 없고 맞는 옷이 있다. 모델에게 맞는다고 나한테도 맞는 건 아닐 게다. 내가 입기엔 편한데 남이 보기에 불편한 옷도 있다. 눈에 거슬린다고 그걸 핀잔해도 괜찮을까. 입어보고 맘에 안 들면 그냥 제자리에 걸어놓으면 된다. 굳이 ‘이건 별로네’ ‘도대체 이런 옷은 누가 입지’라고 상처 주는 일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지 크게보기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옷을 사람으로 바꿔보자. 나랑 맞는 사람, 좋은 사람, 편한 사람,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나 처음부터 왠지 싫은 사람은 있다. 거기서 멈추면 되는데 싫은 사람을 미워하고 그걸 굳이 표현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비호감은 성격이나 외모가 맘에 들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성격은 몰라도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선 곤란하다. 실수를 줄이려면 겉보다 곁을 봐야 한다. 어떤 옷을 입고 있느냐보다는 어떤 사람들이 곁에 있느냐가 중요하다. ‘상처 입은 마음은 너의 꿈마저 그늘을 드리워도/ 기억해줘 아프도록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걸’(성시경 ‘두 사람’ 중). 성시경의 노래 중에 곁을 강조한 노래가 또 있다. ‘사랑을 시작할까요/ 그대 곁엔 언제나 내가 있어 줄게요/ 변치 않을 거예요’(성시경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중).

데뷔 초기에 성시경의 별명은 ‘버터왕자’였다. ‘목표달성 토요일’(MBC)의 한 꼭지 ‘애정만세’(2001)에 출연하면서 생긴 애칭이다. 인터뷰에서 ‘저는 느끼한 게 아니라 다정한 거라니까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 공교롭게도 성시경 8집과 같은 날(5월 21일)에 나온 방탄소년단의 노래 제목이 ‘버터’다. 가사 중에 ‘버터처럼 부드럽게/ 우릴 미워해 우릴 사랑해’(smooth like butter/ hate us love us)라는 부분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일치한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스타와 팬의 관계에선 ‘적당히’라는 단어가 안전하고 요긴하다. ‘너무’라는 부사는 원래 ‘넘다(越)’는 동사가 변형된 것이다. 너무 빨라도 곤란하고 너무 다가와도 부담이 된다.

데뷔한 지 20년 된 성시경이 뜻밖에도 국민청원 게시판에 떴다. 내용은 ‘가스라이팅 정신적 피해’다. 많이 놀랐을 것 같은데 차분히 대처를 잘했다. 팬에게 치료를 받게 해드리고 싶다는 조언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조금 서투르고 어색하지만 천천히 알아가요/ 그렇게 시작해 봐요/ (중략) 정말 서두르진 않을 거예요/ 한 걸음 한 걸음씩 그대가 나를 느끼게’(성시경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중).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를 작사한 심현보가 ‘가볍게 안는다’(2018)는 책을 내면서 이런 말을 했다. “그냥 일상이나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것들을 과하지 않은 강도로 가볍게 쥐고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과하지 않은 범위에서 좋은 것을 하나하나 모으고 싫은 것을 하나하나 버리면 삶은 좋은 것들로 둘러싸일 것이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