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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개봉 ‘빛나는 순간’ 해녀 할머니 역 고두심을 만나다

“33살 연하남과 파격적 로맨스
엄마역만 하다 29년만의 멜로
4·3사건 아픔·풍속 등도 담아
안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약 6분간 오열하는 독백신서
나도 모르게 맺힌 恨 쏟아내”

“‘미스고’와 ‘국민엄마’였다가 만난 늦깎이 멜로…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21일 오후 ‘국민엄마’로 각인된 배우 고두심(70·사진)을 만났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영화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의 멜로 주인공 자격이었다. 강인한 제주 해녀 진옥을 연기한 그는 실제 33세 연하인 배우 지현우와 그윽한 멜로 연기를 보여줬다. 보기에 따라선 매우 파격적이었다.

“감독님이 ‘고두심 얼굴이 제주의 풍광’이라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연하남과의 멜로라니…. 하하. 그러나 그보다는 해녀의 이야기, 아픈 역사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제주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작품이라는 의미가 더 컸다. 그래서 멜로 연기는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고두심은 1972년 MBC 공채 5기 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했다. 올해로 배우 경력 49년의 베테랑이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22년을 드라마 ‘전원일기’의 큰며느리로 지냈다. 그가 하는 게 연기인지 실제인지 헷갈릴 즈음 어느새 그는 ‘국민엄마’ 대열에 들어섰다.

“가장 마지막으로 했던 로맨스 연기가 1992년 곽지균 감독의 ‘이혼하지 않은 여자’다. 중년 주부가 남편의 외도에 상처 입고 젊은 청년과 위험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였다. 그때 상대가 ‘장군의 아들’로 떠오른 박상민이었다. 키스신 때문에 그날도 양치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때 현장에 기자들이 있었는데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나쁘진 않다’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29년 만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고두심을 작품으로 이끈 건 멜로가 아니라 내용과 캐릭터에 있었다. 이번에도 애정신은 “그냥 스치는 것”쯤으로 생각했다. 그보다는 고향 제주에서 봐왔던 해녀 ‘삼촌’들, 그리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4·3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였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도 실은 해녀 진옥이 카메라 앞에서 오열하며 독백하는 장면이다. 고두심은 약 6분간 한 맺힌 사연을 쏟아낸다. 컷 없이 단번에 가는 롱테이크신이다. 보고 있으면 같이 울컥해진다.

“4·3 사건은 1948년, 내가 태어난 해는 1951년. 직접 경험하진 못했지만 어려서부터 너무 많이 들어왔고, 꼭 본 것처럼 살아왔다. 원래 감독이 써준 대사는 그보다는 적었다. 그런데 촬영에 들어가니 그냥 줄줄이 나왔다. 감독이 놀랄 정도였다.”

고두심은 인터뷰 내내 거침없고 유쾌했다. 엄마처럼 모든 것을 보듬고, 인생의 숫자만큼이나 여유를 풍겼다. 그건 아마도 데뷔 전 한 중소기업에서 ‘미스고’로 일했던 남다른 경험에서 비롯하는 듯했다. “제주에서 상경해 데뷔하기 전에 일반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별명은 ‘미스고’였다. 4년간 급사, 비서, 현금출납 등을 담당했다. 그러다가 ‘배우 하러 왔는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어 MBC 공채에 지원해 합격한 것이다.” 고두심 특유의 뚝심이 느껴졌다. 이 이야기를 듣다가 약속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미스고’와 데뷔 초기의 에피소드는 다음 기회에 다시 듣기로 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