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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호 ‘기억날 그날이 와도’

그 방엔 꽃이 많다. 심은 꽃밭이 아니라 세운 꽃 벽이다. 벽 한가운데서 누가 환하게 웃고 있다. ‘어여쁜 우리 님 가시는 먼먼 길에/ 흰 국화 만발해라’(산울림 ‘떠나는 우리 님’ 중).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흰 꽃을 들고 사진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아주 옛날부터 혼자뿐이던 곁에/ 하얀 너의 넋이 찾아와/ 내 마음속에 조용한 돋움은/ 작은 그리움인 줄로만 알았는데’(남궁옥분 ‘꽃을 주고 간 사람’ 중).

묘소는 땅이지만 빈소는 방이다. 빈소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하다. 꽃들이 말하고 사람은 침묵한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 이별엔 리허설이 없다. 떠난 자는 미소 짓는데 남은 자는 탄식한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김광석 ‘서른 즈음에’ 중). 빈소는 기억이 편집되는 자리다. 웃는 이에게 오늘은 떠나는 날이지만 우는 이에게 오늘은 그를 다시 품는 날이다.

대한축구협회가 SNS를 통해 유상철 전 감독을 애도했다. “당신과 함께한 그날의 함성과 영광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스물다섯 글자 중 ‘함성과 영광’보다는 ‘함께한 기억’이 가슴에 내려앉는다. 상처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라운드를 펄펄 날던 올라운드멀티 플레이어는 이제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조용한 이웃이 될 것이다. ‘본 적 없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네 모습처럼/ 날 수 없는 새가 된다면/ 네가 남긴 그 많았던 날/ 내 사랑 그대 조용히 떠나’(홍성민 ‘기억날 그날이 와도’ 중).

이미지 크게보기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좋은 노래의 기준은 뭘까. 들으면 귀가 즐겁고 부르면 가슴이 뛰는 노래다. 눈을 감으면 그대가 달려오는 노래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준은 아니다. 나에게 좋은 노래가 있고 너에게 좋은 노래가 있다. 좋은 노래인 경우 나는 대부분 그 첫 만남의 장면을 기억한다. ‘내겐 많은 시간이 흘러 널 잊은 듯했는데/ 너와 자주 들었던 노래가 그때 추억을 깨우네’(오태호 ‘기억 속의 멜로디’ 중). 편집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옆방에서 아름다운 멜로디가 나를 끌어당겼다. 후배가 뮤직비디오를 편집하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방에서 노래에 탐닉했다. 편집실 엔지니어가 나를 부르러 올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노래가 바로 ‘기억날 그날이 와도’였다. 노래를 부른 홍성민(1964∼2007)은 먼저 저세상 사람이 됐다.

비슷한 경험이 더 있다. 김현식(1958∼1990)의 ‘내 사랑 내 곁에’를 처음 들었을 때도 한동안 그 자리에 묶여 있었다. 이런 좋은 노래, 이런 슬픈 노래들이 모두 한 사람(오태호)의 머리, 아니 가슴 속에서 나왔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 오태호의 멜로디를 예측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이오공감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중).

이별은 형제가 많다. 결별, 고별, 석별, 송별, 작별 등. 이 중에 결별은 기약 없는 이별이다. 우리는 그와 영원히 헤어진 걸까. 뉴스화면은 ‘하늘의 별이 된 투혼의 스타’를 기렸지만 음악동네에선 영결식을 따로 하지 않는다. 여기선 이별도 별의 종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 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윤형주 ‘두 개의 작은 별’ 중).

세상엔 기약 없는 이별도 있고 이별 없는 기약도 있다. 마돈나의 노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Till death do us part)는 지키기 어려운 약속임이 증명됐다. 음악동네엔 ‘이별 아닌 이별’도 있다. ‘이제 떠나가는 그대 모습 뒤로/ 아직도 못다 한 나만의 얘긴 흐르지만’(이범학 ‘이별 아닌 이별’ 중). 이 노래도 오태호 작사·작곡이다. 이 세상에서 ‘못다 한 나만의 얘기’는 악보 속에서 오늘도 꽃을 피운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