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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⑤ 개인 자유와 공익 충돌 해법

확진자 동선 추적·감시의 구조가 사생활 영역 침범
자의적으로 공익 잣대 들이대며 입맛대로 집회 제한

개인도 공익 위한다며 자발적으로 자유권 포기하고
다른 개인의 ‘빅브러더’돼 감시하며 비방 쏟아내기도

“수정 씨, 주말에 교회 갔다 온 거 아냐?” 지난 17일, 3년 차 직장인 김수정(여·29) 씨는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다 돌연 상사에게서 이 같은 질문을 받았다. 식당 텔레비전에서 교회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이 확산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자, 개신교 신자인 김 씨에게 시선이 쏠린 것. “온라인 예배를 드린 지 오래됐다”며 부인했지만, 상사와 동료들은 “지금 교회 가는 사람들 이해가 안 간다”거나 “모이지 말라고 했는데 모여서 이 지경 아니냐”며 말을 보탰다. “수정 씨도 그렇게 생각하지?” 라는 확인도 잊지 않았다. 김 씨는 “‘교회발 코로나’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꼭 이 질문을 받는다”며 “교회 다니는 게 죄도 아닌데, 감시당하는 기분”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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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491일째인 24일, 개인의 자유와 공익이 충돌하고 있다. ‘5인 이상 모임 금지’ ‘종교·실내체육·유흥시설 영업 중지’ 등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각종 조치와 개인의 사생활 보호라는 가치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다. 민주화의 산물이자 대한민국의 자랑으로 여겨지던 집회·결사의 자유 역시 방역이란 명분 아래 제한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 패놉티콘’= 지난해 2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신천지 확진자 불륜 들통남’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부산시 보건당국이 당시 집단 감염이 발생한 온천교회 확진자 동선 관련 브리핑을 하며 “13번 환자는 온천교회 다니는 19번 환자와 약혼자 사이”라고 밝힌 것이 화근이었다. 19번 환자가 동선이 공개된 다른 환자와 같은 시간 같은 숙박시설에 머무른 것을 보고 온라인상에서 “약혼자를 두고 불륜을 저질렀다”는 가짜뉴스가 퍼진 것이다. 부산시가 사실이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근거 없는 소문은 이미 일파만파로 퍼져 있었다.

이는 해프닝으로 넘길 수 없는 사건이었다. ‘감염병 확산 저지’라는 명목 아래 이뤄지는 확진자 동선 추적과 감시 구조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뚜렷한 치료제가 없는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는 신체적 위협을 빌미로 동선과 나이, 사는 곳, 인간관계까지 모두 노출되는 사생활 침해가 목격된 순간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코로나보다 동선 공개가 더 무섭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돌았다.

이후 자신의 자유권 침해에 두려움을 느낀 개인들이 역설적으로 타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일부 집단 감염이 발생한 교회에 대한 경계를 모든 종교집회로 확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방역 수칙을 준수해 진행되는 종교활동마저도 비방의 대상이 됐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지난해 10월 “성별, 연령, 국적, 거주지 및 직장명 등 개인을 특정하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확진 환자의 이동 경로 등 정보공개 지침’을 발표하며 더 이상 정부로부터의 개인정보 유출은 없어졌다. 하지만 확진자가 발생할 때마다 그들의 정보가 담긴 일명 ‘찌라시’가 도는 것이 현실이다.

모두가 모두의 동선을 주시하고 추적하는, 신종 ‘패놉티콘(panopticon·원형감옥)’이자, 새로운 형태의 ‘빅브러더’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인 최초로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에 선출된 것으로 잘 알려진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역시 최근 자신의 코로나19 감염 기록을 엮어낸 ‘나는 감염되었다’(문학동네)를 통해 이 같은 현실을 비판했다. “코로나19는 내 명함에 새겨진 온갖 직책과 직위를 떼버리고 … 확진자로서 이 사회의 혐오와 모욕과 부조리를 온몸으로 겪어내 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게인 멸사봉공’과 ‘우리 안의 파시즘’=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상징적인 존재와도 같은 집회·결사의 자유 역시 방역 우선주의의 잣대를 피하지 못했다. 시작은 지난해 8월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진행했던 광복절 집회였다. 서울시가 해당 집회를 두고 “(신규 확진자가 세 자릿수로 늘어난 것은) 광복절 집회와 관련된 집단 감염의 영향”이라고 규정한 데 이어, 노영민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집회 주동자들은 살인자”라고 발언한 것이다.

지난해 3·1절 집회를 앞두고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서울경찰청은 118개 중대 7000여 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집회를 막았다. 차량 시위에 대비해 도심 진입로 등 30여 곳에서 검문도 벌였다. 지난해 개천절과 한글날에는 광화문 일대에 버스 500여 대로 차벽을 설치,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로부터 ‘재인 산성’이라는 힐난을 샀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결사의 자유가 힘을 잃고 다시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고 공(公)을 위해 사(私)를 버리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시대’로 회귀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멸사봉공과 선공후사(先公後私)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외면하고 저항권을 억압하는 논리로 자주 동원됐다. 개인의 권리는 ‘공산주의 북한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혹은 ‘가난을 딛고 조국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언제든 무시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종종 빨갱이나 매국노로 몰려 탄압받았다. ‘전체’만 있고 ‘개인’은 없는, 파시즘(fascism)의 전형이다.

문제는 이런 논리가 일반 시민들에게 깊이 각인돼, 1987년 민주화 이후 3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 등은 일찍이 이 같은 현상을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파시즘의 논리가 개개인의 심층에까지 파고들어 민주적 사고를 방해하고 있다는 얘기다. 민주화 이후에도 여러 정권이, 심지어 ‘촛불 정권’을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조차도 집회·결사의 자유를 수시로 억압한 사실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실제로 코로나19 시대, 많은 국민이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자유권을 너무도 쉽게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있다. 개인이 다른 개인의 ‘빅브러더’가 돼 감시하는가 하면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비방을 쏟아내기까지 한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아낌없이 금 모으기에 나섰던 국민성 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엔 과하다. 시민의 자유야말로 오랜 민주화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효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4일 “인간은 ‘밀실(사적 공간)’과 ‘광장(공적 공간)’을 동시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며 “다수의 폭력 앞에서 개인은 변명하거나 저항할 여지가 없는 만큼, 사적 사항이 공론화돼 사람을 질식시키는 것은 큰 문제”라고 했다.

◇“자유권 제한은 엄격하고 공정하게”= 헌법 제37조 2항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요건을 명시하고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적시하고 있다. 기본권 제한은 가능하지만,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고,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부가 ‘방역’과 ‘공익’이라는 명분을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자의적으로 사용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정권의 필요에 따라 국민의 자유권을 ‘입맛대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24일 “결과적으로 정부의 공공 행사는 다 하면서 ‘드라이브 스루’ 집회마저 막고 있다”며 “과잉금지, 과잉규제 논란이 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역과 개인의 자유를 모두 보장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데,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짚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친야 집회에는 차벽을 세우고, 친여 집회는 말로만 비판하며 사실상 허용했던 ‘차별적 대응’ 문제도 있었다”며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