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달 퇴임 후 본격 대선행보를 시작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평소 온화하고 합리적이었던 리더십과는 달리 최근 경쟁 대선후보에 대한 공격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 등 리더십에 변화를 주고 있다. 김동훈 기자

■ 대권경쟁 뛰어든 정세균 前총리

- 정·재계 넘나든 경험
‘미래씨앗 통장’ 1호공약 내놔
경제전문가로서의 자질 부각
신뢰감·포용의 리더십 강점

- 미미한 지지율은 한계
총리시절엔 1~2%대 머물러
대선행보 본격화 뒤 4%대로
이재명 등에 强攻, 존재감 키워

지난달 16일 총리직을 사임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대권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때로는 유연하고, 때로는 강단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당심, 민심에 다가서고 있다는 평가가 캠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재계와 정·관계를 넘나들며 쌓은 풍부한 국정 경험이 그의 경쟁력이다. 지난달 29일에는 신생아 적금으로 20세가 됐을 때 1억 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미래 씨앗 통장’ 구상을 첫 공약으로 내고 ‘경제 대통령’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인시켰다. 여야 잠재적 경쟁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해 거침없이 견제구를 던지는 것을 두고는 ‘미스터 스마일 정세균이 달라졌다’는 시각도 있다. 평소 정제된 발언에서 묻어나듯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향이지만, 공격적 행보를 주저하지 않으면서 ‘투사’로서의 리더십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신뢰감·포용력은 장점, 옅은 자기 색채는 약점=정 전 총리는 총리 퇴임 나흘 만에 에세이집 ‘수상록’을 내고 본격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 최근까지는 기업인, 경제인으로 근무한 경험을 앞세워 경제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부각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쌍용그룹에 입사해 임원까지 지냈고, 산업자원부 장관 등 관련 행정 경험도 풍부하다. 정 전 총리는 지난 5일 페이스북에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경제의 밑바탕을 (낙수 경제가 아닌) ‘분수 경제’로 혁신해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쓰는 등 스스로 다양한 구상을 내놓으며 전문성을 과시하고 있다. 국무총리 재임 시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며 방역에 집중하느라 경제 역량을 선보이지 못한 아쉬움을 곧잘 주변에 털어놓는다. 이 때문에 대권에 나선 지금 코로나19 이후의 위기관리 능력과 경제 회복을 위한 능력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신뢰감 있는 이미지와 원만한 인품, 적을 만들지 않는 리더십은 정 전 총리의 강점이다. 남다른 포용력으로 당내에 정 전 총리를 따르는 계보 의원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교수는 “당 대표, 국회의장, 국무총리까지 지내면서 여러 계파나 조직을 운영해봤기 때문에 갈등을 해결하는 역량이 뛰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모나지 않은 성품이 순기능을 발휘해 한때는 ‘정세균계’가 당내 최대 계파였을 정도”라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오는 11일 자신을 지지하는 의원 모임인 ‘광화문포럼’ 조찬 강연에 나서 소상공인 손실보상제 등에 대한 정책 구상을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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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이 중량감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것은 한계점으로 거론된다. 총리 시절에는 지지율이 줄곧 1∼2%대에 머무르며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다만 정 전 총리가 본격 대권 행보에 돌입한 이후 최근 지지율 5% 돌파를 눈앞에 두게 되면서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가 대중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달 30일부터 이틀간 전국 18세 이상 1005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정 전 총리 지지율은 4.8%를 기록했다. 캠프 관계자는 “대권 주자로 인식되기만 하면 지지율이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자신했다.

차분한 이미지 때문에 특별한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점도 정치 지도자로서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인이다. 정 전 총리도 이를 의식한 듯 최근 러시아 백신 도입을 주장한 이 지사를 겨냥해 “그분이 중앙방역대책본부 회의에 잘 안 나와서 모른다” “요즘 언행을 보면 비교적 높은 지지율에 취한 듯한데 남 탓하지 말고 먼저 자신의 처신부터 잘 챙겨보라”며 일침을 가했다. 윤 전 총장을 향해선 “좋은 검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평가 절하하는 등 공격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모두와 인연…‘지도자 될 것’ 점지한 조상 일화도 주목=정 전 총리는 총리직 사임 후 가장 먼저 경기 일산의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를 찾은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이 있는 봉하마을을 방문했다. 김 전 대통령 사저에 다녀온 날엔 페이스북에 “다시 국민께 엎드리겠다”며 “김 전 대통령님을 찾아뵌 이유는 다시 김대중으로 돌아가기 위함”이라고 썼다. 봉하마을 방문 후에는 “노무현처럼 일하겠다”며 “힘들고 불안한 국민께 ‘편안한 오늘, 꿈이 있는 내일’을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8일 광주 5·18묘지를 참배한 후에도 정 전 총리는 “김 전 대통령의 실용 정신으로 지역경제를 살리고 노 전 대통령의 국가균형발전을 기치로 광주 호남을 명실공히 대한민국 지역 분권 발전의 한 축으로 정립해야 한다”고 썼다. 진보 진영 적통자로서의 리더십을 강조하며 지지층에 호소한 것이다.

실제로 정 전 총리는 김·노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모두와 일한 이력을 특별한 자산으로 여긴다. 1995년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제안으로 정치에 입문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문 대통령은 그를 국무총리로 기용하며 신뢰를 보냈다.

정 전 총리의 대권 꿈은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일화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 전 총리 고향인 전북 진안 천반산 정상의 ‘금준옥배형(금으로 된 술통에 옥으로 된 술잔 모양)’ 명당에 모신 한 조상 묘 이야기다. 어느 날 정 전 총리 고향 마을의 어른들이 풍수설을 고려해 묘를 이장하려고 봉분을 열었는데 묘에서 상서로운 김이 피어나는 걸 보고 길지라고 여겨 도로 덮었다고 한다.

이 일화와 함께 선대로부터 “앞으로 100년 뒤 ‘균(均)’ 자 항렬 대에서 복이 날 것”이라는 말이 내려왔다고 한다. 정 전 총리는 부친으로부터 “너희 대에서 중요한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난 뒤 ‘큰 정치인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주변에 소개하곤 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선 출마 선언을 정식으로 하고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유권자들에게 설득해야 할 것”이라며 “그러고 나서 유권자들과 진짜 대통령 후보로서 만나 주목받으며 경쟁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진·김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