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경기 용인시청 주차장에 마련된 ‘에코스팀세차장 효(孝)’에 근무하는 노인 직원들이 세차를 하고 있다. 용인시청 제공

용인시 ‘노인 일자리 사업’ 각광

‘스팀세차장 효’ 70대이상 어르신들,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
‘장수하개’ 반려동물 수제간식 생산… 온라인 쇼핑몰 개장도

市, 올해 117억 투입 60대이상 주민들 3870명에게 일자리
“많은 돈 벌지는 못해도 매일 출근할 수 있는 일터 있어 행복”

“우리가 바로 세차 드림팀입니다.” 경기 용인시청에는 특별한 세차장이 있다. 지하 1층으로 향하는 주차장 입구의 ‘에코스팀세차장 효(孝)’라고 쓰인 배너 간판을 지나 청사 별관 부근으로 가면 165㎡ 공간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직원 4명이 기다리고 있다.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이다. 은색 승용차가 들어오자 직원들은 잰걸음으로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하얀 수증기가 뿜어 나오는 스팀건으로 차의 먼지를 불리면 다른 사람이 세제를 묻힌 헝겊으로 차를 닦는 작업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차 안 계기판과 좌석에 앉은 티끌까지 완전히 닦아내는 데 10여 분. 봄철 꽃가루와 먼지로 뒤범벅이었던 차는 막 출고된 것처럼 반짝반짝 윤기를 냈다. 직원 A(여·73) 씨는 “먼지가 덕지덕지 쌓인 차가 깨끗해지는 걸 보고 있자면 내 마음도 환해지는 것 같다”며 옷소매로 땀에 젖은 이마를 훔쳤다.

‘에코스팀세차장 효’는 노동을 원하는 노인들에게 공공영역에서 일자리를 안겨주기 위한 고민의 결과물. 용인시는 2019년 2월 상부 기관으로부터 예산을 일부 지원받아 1억5000만 원을 마련, 세차장을 만들었다. 부지는 시가 무상 제공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잠시 중단된 적은 있지만, 지난 2년여 동안 단골도 제법 늘었다는 게 직원들의 전언이다. “우리 세차장을 한 번도 찾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찾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최대 강점은 가격. 주변 민간 사업장에서 소형차를 세차하려면 3만∼4만 원을 줘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준중형차도 2만2000원이면 세차할 수 있으니 이용자 입장에선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숙련된 노인 직원들의 꼼꼼한 일솜씨도 장점 중 하나다.

용인시의 노인 일자리 사업이 눈길을 끌고 있다. 거리 쓰레기 줍기 등 환경미화나 공공청사 출입자 체온 측정 등 틀에 박힌 공공일자리를 벗어나 계층별 소비층을 겨냥한 서비스와 재화 생산을 통해 기성 시장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용인시기흥노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반려동물 수제간식 브랜드 ‘장수하개’는 노인이 생산의 주축이 된 시의 대표 상품 중 하나다. 1인 가구 급증으로 반려동물과 연관된 사업이 번창할 것으로 예상하고 시작된 이 사업은 공인된 전문 교육과정을 이수한 60∼80대 직원 15명이 고구마말랭이, 소고기육포, 과일칩 등 39가지 품목의 반려동물 간식을 생산한다. 가격도 대부분 5000원대 미만이어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애견인들도 쉽게 지갑을 연다. 시는 판로 확대를 위해 ‘장수하개’ 브랜드 전용 온라인 쇼핑몰을 개장하는 한편, 인플루언서를 동원한 홍보와 가격할인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노인 직원들이 만드는 용인시의 쌀과자 상품인 ‘백옥미 마을’도 농협 하나로마트 등 지역 판매망과 입점 계약을 맺고 11번가, G마켓 등 오픈마켓에서도 소비자를 만나고 있어 시장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 입맛과 건강을 함께 생각하는 소비풍토를 고려해 시작된 백옥미 마을 사업은 용인 일대의 비옥한 논에서 생산된 ‘백옥쌀’과 현미, 콩 등 지역 농산물을 원재료로 사용해 농가 소득 향상에도 톡톡히 도움을 주고 있다.

용인시가 노인 일자리 지원기관인 용인시니어클럽에 위탁 운영하는 ‘씨스페이스 착한 편의점 효’도 노인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주고 있다. 시내 유동인구 밀집지역으로 꼽히는 용인중앙시장(처인구 김량장동) 부근에 자리한 이 가게는 전체 직원이 60∼80대 주민으로 구성돼 있다. 행정구 청사 내 구내식당 ‘엄마손밥상’에도 노인 직원이 배치됐다. 기존에는 수지구청에서만 8명의 노인 조리사가 일해왔는데, 올해부터는 처인구청과 기흥구청에서도 노인 조리사를 새로 채용해 60대 이상 직원 수가 27명으로 늘어났다.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들도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으로 주어지지만, 사회활동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긴다고 입을 모은다. 처인구청 구내식당에서 조리사로 근무하는 최미란(여·64) 씨는 “조리사 자격증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고 있었는데, 구청 식당에서 일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돈을 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매일 출근할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게 행복감을 준다”고 말했다.

시청 세차장 직원 B(73) 씨는 “수년 전 은퇴한 이후로 일자리를 못 찾던 차에 얼마 전 아내까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삶의 의욕을 잃었던 적이 있다”며 “그때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건네준 위로의 말이 다시 일어설 용기와 희망을 줬다”면서 고마움을 나타냈다.

시는 올해 말까지 117억 원을 투입해 3870명의 60대 이상 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충분히 일할 수 있는 건강 상태인데도 정년을 이유로 은퇴를 강요당한 60대 이상 실업자들은 재취업에 많은 어려움을 호소한다”며 “이 과정에서 경제적 궁핍은 물론 심리적 위축으로 우울감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자체만으로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용인 = 박성훈 기자 psh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