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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층 전유물 비판 잇따르자
마크롱, 모교 폐교 극약처방
“공공서비스연구소 새로 설립”
사회적 사다리 확보 최우선
지지율 급락 따른 타개 조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8일 대통령 4명을 배출하고 프랑스 정·재계 최고위직을 독점해온 ‘권력의 산실’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를 내년에 폐교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ENA는 배경에 상관없이 전문 공무원을 양성하겠다는 의도로 설립됐지만 점차 엘리트주의와 특권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면서 이 학교 출신인 마크롱 대통령이 모교 폐교라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노란 조끼’ 시위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실패 등에 따른 비판 여론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프랑스24 등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고위공무원 대상 화상회의에서 “ENA를 폐교 조치하고 ‘공공서비스연구소’(ISP)라는 이름의 새로운 기관으로 대체하겠다”면서 “새 연구소는 다양성 확보가 최우선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마크롱 대통령은 “사회적 (기회의) 사다리가 50년 전보다 오르기 더 어려워졌다. ‘사회적 이동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회의 사다리를 복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지만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조치 배경에는 최근 지지율이 현저히 낮아진 게 주요 요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처음 ENA 폐교 방침을 내놓은 2019년은 마크롱 정부 정책을 비판한 ‘노란 조끼’ 시위가 극심했던 때였다. 그러다가 최근 프랑스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에서 뒤처지고 피해가 확산하면서 또다시 위기에 몰리자 이번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칸타르 퍼블릭이 발표한 마크롱 대통령 지지율은 36%에 그쳤다. 프랑스 현지언론인 유럽1 뉴스는 “마크롱 대통령이 오늘 발표한 ENA 폐교 조치에 이어 일자리 이동성과 빈곤, 환경문제 등 이슈에 더욱 과감한 개혁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NA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1945년 설립된 소수정예 공무원 양성 특수대학으로, 매년 80~9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 입학과 동시에 국가공무원 신분이 되는 ENA 학생들은 졸업하면 간부 공무원이 돼 프랑스 정부의 중요 정책에 관여한다. ‘에나르크’(enarques)로 불리는 이곳 동문은 프랑스 정·재계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데, 마크롱을 포함해 프랑스 대통령 중 무려 4명이 에나르크다.

하지만 배경에 관계없이 재능에 근거해 최고의 공무원을 키워내자는 본래의 목표는 시간이 갈수록 퇴색됐고 특권층의 권리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다. 프랑스 불평등 관측소에 따르면 부모가 고소득 전문직인 학생은 빈곤층 학생에 비해 ENA 입학 가능성이 12배 높으며, 이른바 특권층 출신 재학생 비중은 70%에 달한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