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라는 착각이 국가부도 불러
깨어 있는 시민의식·교육 절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가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다수결의 원리’ 같은 것이 그 예다. 국민이 다수결을 최고의 의사결정 수단이자 가장 정당한 결과로 오해하는 순간 포퓰리즘이 창궐할 틈이 생긴다.

포퓰리즘은 표를 받아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정치인이 불완전한 민주주의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다수의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정권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가장 쉽게 발견된다. 정치 행위가 있는 곳이라면 포퓰리즘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여당과 야당이나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발견된다.

‘재정 환상(fiscal illusion)’은 포퓰리즘의 부작용 중 가장 큰 문제다. 달콤한 사탕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어금니를 썩게 만드는 것처럼 포퓰리즘은 달콤한 구호 뒤에 숨어 있는 비용 부담의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소비한 공짜 선물의 비용은 누군가의 세금으로 부담한다. 포퓰리즘 공짜 선물에 필요한 비용은 대부분 다음 세대로 떠넘겨지거나 현세대의 증세로 이어진다.

만약 정부 재정이 이 비용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면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한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부작용이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납세자들은 공짜 서비스가 매우 저렴한 것으로 착각하거나 어차피 투입되는 재정은 내 돈이 아니고 나중에 해결할 일이라는 환상에 빠져, 누구 하나 거절하지 않고 공짜 서비스를 환영하기 일쑤이다. 공짜 서비스가 반복되면 어느덧 이를 혜택이 아닌 권리로 인식하게 되며, 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 다시 포퓰리즘 서비스를 늘리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국가 재정을 파탄 내는 사례들은 흔히 발견된다. 한때 경제 대국의 길을 걷던 아르헨티나, 그리스 등이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가부도를 맞았고, 베네수엘라는 우고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이후 초인플레이션과 경제 파탄으로 5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나라를 떠나는 현대판 ‘엑소더스’를 경험했다. 한국에서도 포퓰리즘 정책이 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때도, 숙원 사업이라는 이유로 예비타당성 조사 심사를 면제한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남발할 때도 포퓰리즘 논란이 불붙었다.

포퓰리즘이 창궐하면 건강한 민주주의의 보루인 선거제도가 무력화된다. 선거제도의 무력화는 오직 정권 재창출만 생각하는 ‘포퓰리스트 연성독재’와 국가부도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포퓰리즘이 판치지 않게 하려면 깨어 있는 시민의 냉철한 선택이 필요하다. 이런 시민은 하루아침에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 눈앞에서 민주주의의 자살을 목도하지 않으려면 건강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올바른 민주주의의 의미를 교육해 온 선진국의 경험을 배우고 제도적 장치를 갖추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민창 조선대 행정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