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그날, 그곳에서

COVID-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백신에 대한 안전성과 이 팬데믹 시대가 정말 끝날 것인가에 대한 여론은 하루가 다르게 뒤집히지만 어쨌거나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마지막이다. 정말 마지막까지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그런 마음으로 곧 되찾을 우리의 일상을 기다린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팬데믹 이전의 시대로 완벽히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관중이 빽빽하게 들어찬 공연장과 경기장은 수일 내에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언제 어디서 또다시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찾아올지 모르는 불안감은 한동안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가게를 들어갈 때마다 작성해야 했던 출입명부와 온도체크, 거리두기와 환기는 COVID-19보다 더 오래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고, 불특정 다수와의 만남을, 자유로웠던 해외여행을 그보다 더 오래도록 기피할 것이다. 그러니 ‘되돌아간다’라는 말은 다분히 희망적이고 동시에 절망적이다. 이전의 사회, 이전의 생활, 이전의 생각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안타깝게도 딱 하나뿐이다. 이 사태가 일어나기 전으로 시간을 돌리는 것. 그런 의미로 내게 시간여행물은 언제나 뒤끝이 좀 먹먹하다. 누군가를 살리거나,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누군가를 마주치기 때문이다.

최근 읽은 이경희 작가의 ‘그날, 그곳에서’(안전가옥)는 2025년 부산에서 일어난 원전 폭발 사고로 엄마를 잃은 해미가 20년 후, 그날의 사고로부터 엄마를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로 가는 타임리프 과학소설(SF)이다.

사고 이후 동생 다미와도 연을 끊으며 그날을 후회하고 자책하며 살아가는 해미의 앞에 정체불명의 두 인물 휘와 현이 나타나 다이브 머신을 이용해 과거로 가 엄마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엄마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는 해미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과거로 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날 그곳에 있지 않았다면, 그날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설을 세우며 우리는 언젠가 기적처럼 기회가 찾아오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그것이 아직은 불가능한 시대이기에 우리는 묵묵히, 우리가 만든 수많은 가설을 발밑에 묻혀둔 채 내일을 살아가야 한다.

‘그날, 그곳에서’는 타임리프의 규칙성과 눈앞에 펼쳐지는 생생한 액션신으로 흡인력이 강한 작품이다. 끝의 끝까지 가도록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소설이다. 그러니 우리도 정말 끝의 끝까지 왔다는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방역을 철저히 지키면서, 날 좋은 날 집에서 이 소설의 속도에 빠져들어 보는 건 어떨까.

소설가

이미지 크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