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유하(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세종대 교수, 노명우 아주대 교수,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 학자들, SNS로 실시간 소통 늘어

노명우 교수, 철학서·소설 놓고 매주 일요일 라이브 방송
홍석경 교수는 클럽하우스 통해 ‘BTS 인종차별’ 관련 갑론을박
박유하 교수, 램지어 美하버드대 교수 언급 글 해명 계획도

독서인구 줄어 고민 많던 학자들, 말의 확장성에 쾌감
TV·유튜브보다 편집 등 부담없는 라이브 방송으로 존재 증명

지난 7일 오후 8시 30분. 서울 은평구 니은서점 주인인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라이브 방송 중’임을 알리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노 교수는 지난해 8월부터 매주 일요일 밤 ‘인스타 라방’을 진행하고 있다. 북토크, 신간 소개, 문화·예술 토론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수십 명의 청중과 30∼40분간 소통한다. 7일엔 최근 읽기 시작한 철학자 프랑크 마르텔라의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을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노 교수는 이 책에 대해 “자기계발서는 아니지만 삶을 둘러싼 중요한 질문을 담은 ‘실용적’인 철학서”라며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을 다룬 3장에서 생각의 실마리를 찾는 통찰을 얻었다”고 전했다. 그는 다음 주엔 박완서의 ‘휘청거리는 오후’,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귀향’ 등 다섯 권의 소설을 놓고 ‘사회학자가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서재에 틀어박혀 글만 쓰는 학자’라는 고정관념은 이제 옛말이다.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변하면서 유튜브는 기본이고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 클럽하우스 등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직접 소통 반경을 넓히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마이크를 잡고 대중과의 접점을 확장하는 ‘21세기형 지식인’으로 거듭나면서 지식 유통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강연·낭독회부터 논란 해명까지=‘노장철학’ 전문가인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7월부터 매달 한 차례씩 개그맨 고명환과 함께 책 한 권을 소개하는 유튜브 라이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지난달 24일엔 ‘이솝우화’를 읽었고, 29일엔 중국 작가 루쉰의 ‘아큐정전’을 소개할 예정이다. 불교 경전 ‘반야심경’에 대한 6회짜리 강연 시리즈를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 최 교수는 2월 중순엔 제자와 함께 클럽하우스 방을 개설해 200여 명의 청중과 ‘창의적 인간이 되는 방법’을 놓고 토론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홍석경 서울대 교수가 참여한 클럽하우스 방 이미지 캡처.

최근 인기를 끄는 이 음성기반의 클럽하우스는 학자들의 플랫폼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한류 연구자’이자 방탄소년단(BTS) 팬덤 ‘아미’인 홍석경 서울대 교수는 지난 6일 김영대 음악평론가, 이지영 세종대 교수 등과 함께 일종의 콘퍼런스처럼 ‘독일 라디오 호스트의 BTS 인종차별 사건’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다. 지난해 12월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의 오류를 지적한 곽민수 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도 이집트 역사와 문화를 강연하고 있다. 인스타 라방 DJ인 노 교수 역시 지난달 중순부터 클럽하우스에서 24일 동안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여럿이 돌아가며 읽는 ‘낭독 챌린지’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 박유하 세종대 교수는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주장한 존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를 옹호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일부 보도와 관련해 클럽하우스를 통해 해명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 실리콘밸리의 한 창업자가 개발한 클럽하우스는 최근 애플스토어 다운로드 800만 건을 돌파하는 등 국내외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얻고 있다.

◇텍스트 아닌 ‘말’의 현장성 쾌감=클럽하우스와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경험한 학자들은 한결같이 ‘말’의 확장성과 쾌감에 매료됐다고 했다. 노 교수는 “그동안 ‘글’과 ‘텍스트’를 매개로 소통해왔는데 ‘독서 인구’가 갈수록 줄어 고민이 많았다”며 “독서 인구 이외의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 가운데 주도권이 제작진에게 있는 TV 프로그램은 내키지 않는 포맷이었고 ‘장비·편집 싸움’인 유튜브도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인스타 라방은 편집도 필요 없고 경비도 안 들면서 ‘텍스트’가 아닌 ‘말’로 소통할 수 있어 매력적이었다”는 그는 “다만 나는 말을 하는데 라방 시청자들은 ‘댓글’이라는 텍스트로 의견을 전달하는 불균형이 아쉬웠는데 모두 같은 방법으로 소통하는 클럽하우스가 이런 아쉬움을 해소해줬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말 자체가 즉흥성과 현장성에 기반한 ‘살아 있는 언어’이다 보니 글로 소통할 때보다 쾌감이 훨씬 크더라”며 “실시간으로 댓글이 달리고 수백 명이 현장의 긴장감을 느끼며 ‘지금, 이 순간’에 동참하고 있다는 짜릿함에 라이브 방송을 계속 활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자기 PR 시대, 지식인의 존재증명=이처럼 새로운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학자들의 모습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기 PR과 ‘관종(관심 종자의 준말) 정신’의 시대, 지식인들이 살아남기 위한 존재증명 방식”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논문을 쓰고 학회에서 발표하면 주목받는 것은 ‘구(舊)패러다임’이자 ‘올드 스쿨’이 된 지 오래”라며 “대학교수라는 안정된 직업이 있는 연구자들조차 이 사회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소통 방식이 필요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 성실하면서도 용감한 지식인들이 학계의 새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며 “대면 소통보다 온라인 소통이 대세가 된 ‘코로나 풍속도’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온라인상의 활발한 소통이 정제되지 않은 정보가 떠돌아다니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 교수는 “철저한 검증을 거치는 논문이나 책 저술과 달리 유튜브·인스타 방송 등은 잘못된 정보를 걸러지지 않은 상태로 내보낼 위험이 있다”고 꼬집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