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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신춘문예 20대 당선자 3人 ‘이 시대, 왜 작가인가’

디지털 시대에 가장 효율 떨어지는 일 중 하나로 꼽히는 게 ‘글쓰기’다. ‘글 값’은 오르지 않고, 책 시장은 줄고 있다. 그런데 2021 문화일보 신춘문예에선, 네 공모 분야 중 세 부분에서 아직 만 서른이 되지 않은 1990년대생이 당선의 영광을 누렸다. 디지털 세상에서 나고 자란 이들. ‘글쟁이’가 되고 싶어 피, 땀, 눈물을 흘렸다. 대체 왜, 지금? 지난달 30일, 서울 문화일보 본사에서 이들을 만났다. 남수우(29) 시 당선자, 김화진(28) 소설 당선자, 김진석(26) 평론 당선자가 주인공이다.

―어떻게 읽고, 또 쓰며 살아왔나.

△(수우) 군대 병영 도서관에서 시집을 찾아 읽고, 필사도 했다. 전역 후 해외 연구소에서 인턴을 했는데,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오전 4시 반에 일어나 9시 출근 전까지. 귀국 후 대학원에 진학해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사서교육원에서 연수 중이다.

△(진석) 어, 나도 군대에서 필사했는데… 하하. 대학 때 과제로 처음 평론을 쓰고, 그걸 한 출판사에 투고했는데 어느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글이 진중하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 후로 연말이 되면 늘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화진) 한국 문학이 좋았다. 계속 읽고 싶었고, 이왕이면 ‘이건 왜 이렇게 썼죠?’라고 바로 물어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문학 편집자가 됐는데, 이 자리가 내게 맞다 생각하면서도, 나도 쓰고 싶었다. 80장, 100장짜리 소설 한 편을 딱 뽑아내고 나면, 그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두세 달에 한 편씩 썼고 기회 있을 때마다 투고했다.

―디지털 시대에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 중 하나가 ‘글’이다. 책 시장은 축소됐고, 문학이 설 자리도 좁은 시대라는데. 대체 왜 쓰려고 하나.

△(진석) 이런 시대니까. 남겨두지 않으면 휘발되는 시대니까. 사라지는 걸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는 것 아닐까. 뭔가를 남기는 방법으로 글은 충분히 효용성이 있다.

△(수우) 틀 바깥에 있는 목소리를 불러들일 수 있는 게 문학이니까. 경제 발전, 민주화 같은 공통의 목적을 향해 달려오는 동안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는 것에 문학이 할 일이 있으니까.

△(화진) 나도 그렇고, 독자로만 남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개인이 중요하고, 조금만 노력하면 다들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대다. 예전엔 작가는 작가, 나는 범인. 그렇게 멀었지만 이제 달라진 거다. 그리고 ‘문학이 죽었다, 독자가 없다’는 말은 이상하고 틀린 말이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는 10만 부 넘게 팔렸다. 문학 아직 살아 있는데? 하하.

―1990년대생에 대한 담론이 쏟아진다. 다양한 세대론도 범람한다. 90년대생 당사자의 생각이 궁금하다.

△(화진) 세대론의 대상이 그 내용을 ‘맞다’고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나만 해도 그렇다. 90년대생 특징 중 하나가 회식을 싫어한다는 건데… 나는 회식을 좋아한다. 하하. 90년대생 담론이 많은 건, 지금이 90년대생의 시대라는 거겠지. 내가 그 사회적 연구의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이 좋다. 주인공이라는 뜻이니까. 곧 그게 2000년대생으로 넘어갈 거고, 우리한테 별 관심도 없을 텐데.

△(수우)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을 봤다. 90년대생 특징을 보면서 ‘어? 나만 빼고 이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음슴체’도 안 쓰는데… 하하.

△(진석) 여기서 여기를 말하지 않고, 여기서 저기를 말한다. 강 건너 불구경이라 세대론은 그 자체로 재미있다. 그런데 세대론 책이 정말 ‘저기’를 알고 싶다기보다 나와 타자를 구분 짓기 위한 것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이미지 크게보기 영하 18도였던 지난달 30일, 문화일보를 방문한 김진석(평론·왼쪽부터), 김화진(단편소설), 남수우(시) 당선자. 마스크를 썼어도 당선의 기쁨은 감출 수가 없다. 인터뷰와 사진촬영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방역 수칙을 준수해 진행됐다. 김호웅 기자

―세상은 90년대생을 보고 있고, 90년대생들은 지금 뭘 보고 있나.

△(화진) 쇼미더머니! 아 너무 멋있어. 하하. 나는 래원이 좋다.

△(수우) 나도 랩을 좋아해 한때 크루에 들어간 적도 있다. 랩 가사가 종종 이겨낼 거고, 이겨냈다는 식인데…. 랩을 해 성공한 것도 결국 문학처럼 ‘언어의 힘’을 빌린 것이고….

△(진석) 90년대생들이 슈스케(슈퍼스타케이)부터 시작해서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자라서, 그것에 매우 익숙하다. 아무 말 같은데 랩을 보면 굉장히 문학적이기도 하고.

△(화진) 힙합 뮤지션이나 문인, 양쪽 다 재능도 넘치고, 노력파들이다. 그런데 자신을 보여주는 방식이 다르다. 랩은 엄청 플렉스(자랑) 하는데, 왜 글 쓰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할까. 우리도 그렇게 ‘스웩(swag)’을 보여주면 어떨까. 하하.

△(수우) 래퍼 디플로는 ‘원데이 원버스’라고 해서, 하루에 몇 마디라도 꾸준히 쓴다고 한다. 노력해서 성장하고, 그걸 다시 뽐내는 게 그들의 문화다. 나도 랩 가사를 쓰곤 했는데, 음… 스웩은 잘 안 나오더라.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 하하.

―90년대생 담론이나 세대론을 벗어나, 그냥 ‘나’를 표현해 본다면.

△(진석) ‘갖다 붙이기를 좋아하는 사람?’ 하하. 세대론도 사실 갖다 붙인 거라 본다. 근데 나도 그런 걸 좋아한다.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서 연관성을 찾는 일 말이다. 그걸 발견하고 적확한 단어로 말하는 것. 생각해보니 이게 바로 평론이다. ‘이걸 또 이렇게 갖다 붙이네?’라는 소리가 나오는 글을 쓰고 싶다.

△(수우) ‘매일 꾸준히 하는 사람’ ‘태엽을 감는 사람’이다. 요즘 등산을 한다. 정상을 생각하면 까마득한데, 여하튼 한 걸음은 옮길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태엽을 감는 느낌이다.

△(화진) ‘하루하루 쓰거나 읽는 사람’ ‘오늘의 할 일을 하는 사람’이다. 미래를 너무 예측하지 않으려 한다. 너무 크게 생각하면 늘 망하는 것 같다. 하하. 약간 외면하고 있을 때 내가 건강하더라. 물론 나도 인정 욕구가 있고 신춘문예 당선도 굉장히 갈망했다. 하지만 잘되면 좋고, 안 되더라도 내일은 또 내일의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지난해 문단에 크고 작은 일이 많았다. 문학상 거부, 미투, 사생활 침해, 원고료 문제 등….

△(수우) 이번에 당선되고 첫 청탁 글을 용기 내 거절했다. 청탁은 감사한 일이고, 거절은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일련의 사건에 책임 소재가 있는 출판사에 글을 쓸 수는 없었다. 문단의 변화하는 어떤 흐름에 나 역시 같은 입장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었다. 아주 작은 힘이겠지만.

△(화진)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다행인 건 우리가 이제 뭔가를 거절 혹은 거부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거다. 습관을 바꾸는 한 해였다. 원고료가 적으면, 적게 줄 수밖에 없는 사람의 형편도 있는 것이지만, 받는 사람도 ‘그 원고료에는 글을 못 드립니다’라는 그런 자세도 필요하다.

―이런 시국(?)에 등단했다. 무엇을 보여주고, 또 짊어질 것인가.

△(화진) 기준은 ‘나’다. ‘자기 것’을 소중히 하고 싶다. 그게 보여줄 것이고 짊어질 것이기도 하다. 권위를 겁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수우) 내 생활을 잘 돌보는 것. 그리고 시와 생활 사이의 균형. 그걸 잘해야 할 것 같다. 내 생활만 챙기다가 울고 있는 목소리들을 놓치지 않아야 하니까, 귀 기울여야 하니까.

△(진석) 90년대생이 소비와 생산의 주축이 됐는데, 그런 우리가 글을 쓴다고 할 때, 가장 큰 고민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 사이의 균형일 것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좋은 작가, 좋은 글이란.

△(진석) 자꾸 요약하라고 강요하는 시대다. SNS에서도 5줄 넘어가면 안 읽는다. 그래서 복잡하고 긴 글이 멋있어 보인다. 그걸 색다르게, 예쁘게 내면 좋은 평론이 되고….

△(수우) 생활과 글에 균형이 있는 시인들이 좋다. 그들이 그 마음과 태도로 쓴 시라면, 좋은 시가 될 것이다.

△(화진) 복잡한 걸 복잡하고 정확하게 쓴 글이 좋다. 그리고 작품보다 더 중요한 게 없어 보이는 작가들이 멋지더라.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멸종위기의 귀한 동물’을 보는 것 같다. 하하.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