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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간 정상 지킨 유재석

- 배려
게스트 이름 친근히 부르고
속 깊은 이야기까지 끌어내
출연자들 “그 앞에선 편해”

- 베풂
코로나·산불 등에 수억 쾌척
무명 후배엔 밥 사고 용돈 줘
‘미담 자판기’ 별명 과장 아냐

- 솔선수범
방송 제대로 하려 담배 끊고
하루 녹화 위해 엿새간 공부
주변선 “1인자가 120% 준비”

‘국민 MC’. 유재석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적확한 수식어를 찾기 어렵다. 대한민국을 통틀어 유재석처럼 유명한 코미디언은 있었다. 하지만 코미디언의 위상을 그만큼 높인 인물은 없었다. 유재석은 수년간 여러 여론조사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인 동시에 가장 존경받을 만한 연예인으로 손꼽히곤 했다. 그의 동료들 역시 유재석과의 일화를 전하며 각종 미담을 쏟아놓는다. 그는 20년 가까이 정상을 지키며 지상파 3사 연말 시상식과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총 15개의 대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세월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0년간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줬다면, 그의 본래 됨됨이가 그렇다는 의미다.

◇유재석의 귀

사람의 귀는 2개고 입은 하나다.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의미다. 동료 방송인인 지석진, 김용만 등과 밤새도록 술 한잔 안 마시고 떠들 수 있다는 ‘조동아리’라는 모임을 갖고 있을 정도로 유재석은 말이 많다. 말하고 싶어 입이 튀어나왔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하지만 유재석은 그보다 더 많이 듣는다. 그는 완벽한 녹화를 진행하기 위해 출연진 및 제작진과 평소에도 일일이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사와 댓글도 꼼꼼히 읽는다. 세상을 향해 귀를 열어놓은 셈이다.

20년이라는 세월은 참 길다. 웬만한 내공을 갖춘 사람도 한두 해면 밑천이 드러난다. 그래서 그는 귀를 열고 꾸준히 듣고 공부한다. 유재석의 매니저는 “유재석은 매일 신문 3∼4개를 읽는다”고 말했다. 프랑스 출신 방송인 파비앙은 유재석이 진행하는 SBS 예능 ‘런닝맨’ 녹화장에서 만난 유재석에 대해 “촬영했을 때 친근하게 이름도 불러주고 국적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사항을 모두 알고 계셔서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위에서 군림하지 않고 곁에서 귀를 열고 있기에 가능한 행보다.

TV 출연이 뜸한 배우들은 주연을 맡은 영화나 드라마가 개봉될 때 홍보 차원에서 예능에 출연한다. 영화 홍보사 관계자들은 “유재석이 진행을 맡는 프로그램을 잡아달라는 주문이 많다”고 귀띔했다. 배우 정우성, 김고은을 비롯해 얼마 전 처음으로 TV에 얼굴을 비친 웹툰 ‘여신강림’의 야옹이 작가 등도 “유재석의 팬”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예능 문법에 서툰 배우에게 웃음을 담보해야 하는 예능 출연은 부담일 수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유재석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끝까지 듣고 맞장구쳐준다. 그리고 그 말 속에서 화두를 꺼내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어간다. 한 영화 홍보사 대표는 “낯을 가리는 배우가 많은데 유재석 앞에서는 편하게 말할 수 있다고 한다”며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빗장을 풀 수 있는데 이는 유재석이라는 진행자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한 번 정상에 오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걸 20년간 유지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유재석은 다양한 변신 속에서도 특유의 바르고 성실한 이미지로 첫손에 꼽히는 ‘국민 MC’가 됐다. 왼쪽부터 그가 출연했던 ‘해피투게더’ ‘무한도전-스피드 레이서’ ‘무한도전-프로레슬링’ ‘유 퀴즈 온 더 블럭’.

◇유재석의 리액션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연다는 것은 관심의 표현이다. 관심보다 좋은 배려는 없다. 유재석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바로 ‘리액션’이다.

유재석은 누구보다 리액션이 크다. 이를 본 상대방은 신이 나서 더 얘기한다. 주춤거리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훌륭한 MC의 자세다. 그가 방송 문법에 익숙지 않은 비(非)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는 케이블채널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진행하며 큰 인기를 누리는 이유다.

리액션은 ‘공감한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1차 대유행 시기이던 지난 3월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자청해서 대구로 내려간 서울중앙보훈병원 소속 정대례 간호사와 화상 통화로 만났다. 가족의 만류를 뒤로하고 대구에 왔다는 정 간호사는,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냥 잘 있다고만 전하고 싶습니다”고 짧게 답했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은 눈물을 삼키려는 듯 연신 깜빡였다. 그는 “전 여기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는 답만 수차례 반복했고, 대신 유재석이 오열했다. 이 영상의 조회 수는 94만 뷰가 넘었고, “함께 울었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공감의 힘이다.

유재석은 주인공이 되길 고집하지도 않는다. 진행자는 자신이어도 게스트 중심으로 판을 짠다. 그래야 전체가 산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유재석의 곳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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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경제적 여유가 생겨야 주변을 돌아볼 여력도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절대적 명제는 아니다. 곳간이 차면 이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새 곳간을 만들고 다시 채우기 바쁜 이가 적잖기 때문이다. 결국 베푸는 삶을 실천하는 것은, 곳간의 크기에 달린 것이 아니라 곳간 주인의 마음에 달렸다.

유재석은 코로나19, 산불, 지진 피해 등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어김없이 등장해 수억 원을 쾌척했다. 또한 그의 선행은 길게 이어진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꾸준히 돌보는 것을 비롯해 15년 넘게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500만 원씩 기부하고 있고, 지난 2005년 일제강점기 때 강제 징용된 조선인과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일본 우토로(ウトロ) 마을을 방문한 후에는 현재까지 도움을 주고 있다.

먼 곳을 보는 동시에 자신의 주위를 살피는 것도 유재석의 섬세한 리더십이다. MBN ‘나는 자연인이다’로 유명한 이승윤은 “무명 때 유재석 선배님이 목욕탕에 가서 등을 밀어주고, 밥도 사주고, 용돈까지 주셨다”고 당시 느낀 감동을 전한 적이 있다. 결혼한 후배 송준근에게 냉장고를 선물한 것을 비롯해 선후배들의 경조사는 빠짐없이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그들은 입을 모은다. “유재석 선배님의 봉투가 가장 두툼했다.”

◇유재석의 자기관리

모든 동료가 유재석과 함께 방송하고 싶어 할까? 주변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진 않다. 유재석이 싫어서가 아니다. 그와 호흡을 맞추려면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인 MBC ‘무한도전’은 매주 목요일 녹화가 진행됐다. 하지만 이날을 위해 유재석은 나머지 엿새를 준비한다. 다른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다. 유재석의 한 동료는 “1인자가 항상 120%를 준비해온다. 그러니 그를 따라가기 위해 동료들은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약 10년 전 담배도 끊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그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하나를 내친 셈이다. 방송을 위해서였다. 그는 지난 2012년 MBC ‘무한도전’ 300회 쉼표특집에서 그는 “갈수록 체력적으로도 힘들다. 대비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추격전 때 숨이 차고 버겁다. 아슬아슬하게 잡아야 하니까 내가 담배가 좋아도 끊어야지”라고 말했다.

대신 그는 운동을 택했다. 정상을 지키던 20년간 유재석의 체형은 거의 변화가 없다. 오히려 요즘 더 탄력이 붙었다. 그의 슈트 맵시는 유명하다. 이런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유재석은 전성기의 원형을 유지하는 반면, 그에게 영향받은 주변인들은 변화했다. 위에서 지시하는 보스의 리더십이 아니라 솔선수범으로 무리를 이끄는 바람직한 리더상이라 할 수 있다.

유재석은 메뚜기탈을 쓰고 약 10년간 무명의 시간을 보냈다. 동기들이 먼저 스타가 됐기에 박탈감이 더 컸다. 하지만 무명 시절은 그에게 자양분이 됐다. 유재석은 한 방송에서 가상 유서를 작성하며 이렇게 썼다. “늘 불만에 차 있었지만 그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태한 저의 20대가 가장 후회됩니다. 하지만 그런 20대가 있었기에 저의 30대와 40대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철저한 자기 관리의 뿌리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유재석의 사람들

김태호 - ‘예능 세계관’ 만들며 찰떡호흡
송은이 - 속내 터놓는 ‘30년지기 여사친’
하하 - ‘유 라인’ 자처하는 절친한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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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PD)=MBC 김태호 PD는 유재석과 함께 대한민국의 예능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이다. 2000년대 중반 MBC ‘무한도전’을 통해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중심으로 예능 주도권을 바꿔 놓았다. 김 PD는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의 기자간담회에서 ‘TV 유니버스’에 대해 언급하곤 했다. 매회 새롭게 판을 짜는 예능이 아니라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는 세계관을 그리겠다는 포부다. ‘대한민국의 평균 이하 6명의 남성이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것이 ‘무한도전’의 세계관이었다면 현재 방송되고 있는 MBC ‘놀면 뭐하니?’는 부(副) 캐릭터라는 개념을 도입해 유재석에게 다양한 인격을 부여하고 있다. 김 PD는 문화일보에 “셰프가 철마다 가장 좋은 재료로 요리하는 것처럼 각 시점에 맞는 아이템을 다루는 ‘이달의 프로그램’이라는 기획안을 갖고 있었다”며 “제가 그렸던 세계관이 유재석과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하나의 유니버스가 생긴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강호동(방송인)=유재석과 함께 ‘국민 MC’ 자리를 양분했던 인물이다. 유재석이 이끄는 ‘무한도전’과 강호동이 선봉에 선 KBS 2TV ‘1박 2일’은 편성 요일은 달랐지만 동시기에 방송되며 30% 안팎의 시청률을 구가하는 등 예능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사람은 연말 연예대상에서 항상 후보에 나란히 올라 대상을 주고받았다. 수상 소감을 말할 때도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강호동이 잠정 은퇴를 선언할 때도 발표 직전까지 함께 고민했던 인물이 유재석이었다. 이후 다시 복귀한 강호동은 새 예능 ‘달빛프린스’의 기자간담회에서 “‘유재석 라이벌’이라는 말이 최고의 칭찬”이라고 말했다.

◇송은이(방송인)=대학 시절부터 한솥밥을 먹으며 30년간 친분을 쌓은 유재석의 동료이자 친구다. 연예인 지인 수준을 넘어 속내를 터놓고 지내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주변인들은 입을 모은다. 유재석이 현 소속사인 FNC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은 것도 송은이가 먼저 이 회사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은이가 이 소속사를 떠나 직접 연예기획사를 차리자 유재석이 ‘놀면 뭐하니’에서 나무라는 듯한 질문을 던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만큼 격의 없는 사이다.

◇하하·조세호(방송인)=소위 말하는 ‘유라인’의 1대 적자(適者)는 단연 방송인 겸 가수 하하다. 그는 ‘무한도전’과 ‘런닝맨’에 함께 출연하며 유재석의 전성시대를 여는 데 크게 일조했다. 그 배턴은 방송인 조세호가 넘겨받았다. 그는 유재석이 진행하던 ‘해피투게더’의 보조 MC로 인연을 맺은 후 ‘무한도전’의 반(半) 고정 멤버로도 활약했다. 현재 유재석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더블 MC로 출연 중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