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송재우 기자

- 빈곤 극심하고 민주주의 후퇴… 시민들 분노 쌓여 혼돈

노점상 부아지지 분신으로
反체제시위 불 댕겼던 튀니지
고학력자 생계위해 대마초 팔고
유럽 불법 이민이 유일한 희망

예멘·시리아·리비아 내전 계속
경제난 해결없인 민주화 먼 길

지난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의 26세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정부의 노점상 탄압에 항의하며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일자리가 없어 과일 행상을 했던 부아지지는 18일 만에 숨졌고, 이런 부아지지의 죽음은 ‘아랍의 봄’의 도화선이 됐다. 민주화 시위의 불길은 튀니지를 넘어 리비아, 이집트, 모로코, 예멘 등으로 옮겨붙었고 이들 국가 상당수가 독재 정권 축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딱 10년이 지난 지금 튀니지를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 민주화는 사라졌다. 경제적으로는 더 후퇴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사회 불안정이 커졌고, 혼란을 틈타 권위주의가 득세했다. 빈곤은 악화일로다. 부아지지 사건 10주년을 맞은 현재 아랍국가들은 권위주의가 더 강화될 것인가, 아니면 제2의 ‘아랍의 봄’이 시작될 것인가.

◇혁명의 시발점 튀니지, 빈곤 속 새로운 혁명 불씨 = 로이터통신은 부아지지가 몸에 불을 붙였던 튀니지 시드 부지드 등지에선 최근에 ‘새로운 혁명’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지난 15일 보도했다. 혁명이 일어난 지 10년이나 지났지만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 축출 이후 이곳에서 바뀐 것이라곤 2011년 부아지지 기념비가 세워진 것밖에 없다. 빈곤과 권위주의는 여전해 시민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

당시 부아지지의 과일 수레를 압수했던 경찰관은 여전히 근무하고 있고, 컴퓨터공학 전공자였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노점을 했던 부아지지처럼 고학력 실업자들은 넘쳐나고 있다. 과거 교사를 했던 한 남성은 “기계공학을 전공한 친구는 먹고살기 위해 대마초를 팔고 있다”며 “대학 졸업자 대부분은 유럽으로의 불법이민만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에서 튀니지는 혁명 전인 2010년 2.79(144위)에서 2019년 6.72(53위)로 크게 올랐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0년 4140달러에서 올해 3295달러로 약 1000달러 가까이 떨어졌다.

이 같은 불만은 반정부 시위 등 단체행동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최근 시드 부지드 인근의 한 가스 가공공장에는 시민들이 몰려와 도로를 막고 시위를 벌였다. 과거 도시 내에 가스를 공급하던 공장이 폐쇄돼 연료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주민들이 인근 공장으로 몰려와 가스 공급을 요구한 것이다. 도시 내 한 연료 배급처에서 여섯 시간 동안 줄을 서 있던 한 여성은 로이터통신에 “사흘째 가스가 없어 가족들이 식재료를 생으로 섭취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시드 부지드 등에선 부아지지의 기일에 더 큰 반정부 시위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시 부아지지를 지지하며 반정부 시위를 독려했던 한 시민은 “지금의 분노는 10년 전보다 더 크다”며 “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사정 더 열악한 다른 국가들, 혼돈 속 시민 분노는 가중 = 다른 국가들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이집트의 경우 당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40년 철권통치를 종식시켰지만,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첫 민선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가 2013년 집권 1년 만에 압델 파타 엘시시가 이끄는 군부 쿠데타로 축출됐다. 대통령에 오른 엘시시는 지난해 4월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완화한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로 통과시키면서 장기집권 토대를 마련했다.

내전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를 축출한 리비아는 유엔이 인정하는 리비아통합정부(GNA)와 동부 군벌 칼리파 하프타르 리비아국민군(LNA) 최고사령관의 내전이 진행 중이다.

예멘에서는 2015년부터 집권한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의 예멘 정부를 지원하는 아랍동맹군과 친이란 성향 예멘 반군의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

바레인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중동국가들의 개입으로 반정부 시위를 억눌렀고, 시리아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강경 진압으로 오랜 기간 내전 상황을 겪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 등 인권 단체들은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시위가 절정이던 2011년 당시보다 더 많은 정치범이 석연찮은 이유로 수감돼 있으며, 양국의 상황이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반정부 시위를 간신히 수습했던 부테플리카 압델아지즈 알제리 대통령과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도 결국 지난해 실각했다.

경제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한 2020년 각국의 1인당 GDP가 10년 전보다 나아진 국가는 이집트, 바레인, 모로코 3개국뿐이다. 여기에 실제 집계 순위가 올라간 국가는 이집트와 바레인뿐이다. 리비아의 경우 2010년 당시 1만1417달러였던 1인당 GDP가 3282달러로 3분의 1 이하로 떨어졌고 예멘과 수단의 경우도 절반 또는 그 이하로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랍의 봄에 따른 각국 중앙정부의 약화와 혼란은, 지금은 패망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인 이슬람국가(IS)의 탄생 원인이 됐고, 이로 인한 내전 상황은 난민들을 대거 발생시키며 유럽에서 국수주의 및 극우주의가 준동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전쟁을 겪고 최근 유럽으로 망명한 시리아 출신 의사 아마니 발루르는 “(2010년) 시위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정권 억압으로 자유를 침해받은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라며 “큰 좌절과 분노가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 등 국제기구 통한 해결 모색이 유일한 대안 = 전문가들은 각국의 구조적 문제가 하루아침의 혁명으로 극복되기 어려운 데다, 대안 세력이 준비됐던 곳이 드물어 혁명의 과도기를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H A 헬리어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수석연구원은 가디언에 “혁명 주체세력은 지난 10년간 좋은 것을 거의 배우지 못했고,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오히려 본인들의 이권을 위해 이용해왔다”고 분석했다. 라미 야쿠프 타히르중동연구소 소장은 “프랑스 혁명도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듯 아랍의 진통도 오랜 기간 동반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도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변화가 필요하며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가 분쟁 조정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유엔 등의 국제기구가 나서 분쟁 중재의 단초를 만드는 게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이집트 혁명 참가자였던 낸시 오카일 스탠퍼드대 교환교수는 “이렇게 오래 있을수록 국가를 구하는 일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는 정부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무력과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여기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