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 작품 ‘정지용’. 시인 정지용의 시집 ‘백록담’에 담긴 시각적 언어와 상징적 의미를 표현한 1996년 작품이다.

- 이전 기념전 ‘History’ 열고 있는 BHAK 박종혁 대표

최근 청담동서 한남동 옮겨
내년엔 매달 1번씩 기획전

‘도대체 뭐하는 애들이지?’
궁금증 갖도록 새로운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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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만 담는 갤러리를 넘어서겠다는 뜻을 담은 이름입니다. 다른 문화 장르와 협업하며 세계와 소통하고 싶습니다. 해외에서 ‘도대체 뭐하는 얘들이지?’라며 궁금증을 갖도록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갈 것입니다.”

이름을 왜 ‘비에이치에이케이(BHAK)’라고 지었느냐는 물음에 박종혁(사진)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BHAK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27년간 자리했던 ‘박영덕화랑’이 한남동으로 옮기면서 2세 경영체제를 꾸리고 새롭게 바꾼 이름이다. 박영덕화랑은 해외에 ‘갤러리 박(Gallery BHAK)’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 이름에서 ‘갤러리’를 뺐다. “갤러리라고 하면 왠지 어렵게 여겨져서 들어가기에 망설여진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창업자인 박영덕(64) 대표는 해외 아트페어를 개척해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고 국내에서는 유망 작가들을 발굴해왔다. 박종혁 대표는 아버지 박영덕의 노하우를 이어가되 장르를 뛰어넘어 대중 친화적 예술터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그는 경영을 맡았으면서도 명함에 ‘디렉터’라고만 적었다. 기획자임을 알려주는 것이지만, 만 27세의 젊은이로서 겸양의 뜻이 있는 듯도 싶다. 그는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심리학을 공부할 때 아버지의 해외 아트페어 일을 도우면서 미술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됐다고 했다. 진로를 바꿔 한국화랑협회 사원으로 일을 배운 그는 세계 최대 경매회사 크리스티 산하의 에듀케이션 뉴욕에서 아트 비즈니스 석사 학위를 땄다.

그는 국내 화랑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는 한남동에서 BHAK를 시작하며 “내년 1월부터 매달 1번씩 기획전을 할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시대에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했더니,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해보겠다”고 했다. 차분한 음성이었으나 젊은이다운 패기가 담겨 있었다.

그는 현대화랑 2세 경영자인 도형태(51) 갤러리 현대 대표의 사촌이다. 도 대표는 어머니 박명자(77) 회장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되 신진 작가 배출에 힘쓰는 등 새 체제를 착실히 구축해왔다. 박종혁 대표는 “사적으로는 형인 도 대표께서 많은 것을 알려주고 격려해준다”고 했다. 이들의 향후 행보는 국내 화랑가에서 가속화 하는 2세 경영체제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BHAK는 지난 3일부터 이전기념전 ‘History’를 열고 있다. 1층에서 백남준, 박서보, 이우환, 김창열, 윤명로 등 국내 거장과 함께 페르난도 보테로, 살루스티아노 등 외국 작가 작품 20점을 선보인다. 그동안 청담동 시절을 함께했던 작가들이다. 이달 말까지 관람할 수 있다.

지하 1층 전시장은 특별히 백남준 작품으로만 꾸몄다. 모두 32점인데, 비디오 아트를 비롯해 조각, 회화, 판화 등 미술 전 영역에 걸쳐 있는 백남준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오는 19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박종혁 대표는 백남준이 박영덕화랑에서 전시회를 자주 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그때는 그냥 특이한 분이라고만 여겼는데, 나중에 의무감으로 공부해 보니 정말 시공간을 뛰어넘는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백남준의 영상 작업에 모델로 출연한 적도 있다. “한복 입고 제기 차는 모습이었는데, 제가 너무 못 해서 작품에 들어가진 못했어요, 하하. 영상에 실제 모델을 넣어서 그 이미지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지금 봐도 선구적입니다.”

그는 백남준이 비디오 아트 ‘노스탤지어’에서 라디오, 카펫 등 향수를 자극하는 아이디어를 조합한 것에서 기발한 창조성을 배운다고 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영어로 적어놓고 마오쩌둥과 스탈린을 그려 놓은 ‘인공위성’에선 풍자를, 아이들 장난처럼 그려 놓은 만년의 회화 작품에선 위트를 느낀다.

박종혁 대표는 백남준이 기존 것들을 흔들어 섞고 거기서 자신만의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낸 것에 크게 자극을 받는 모습이었다. 젊은 그가 이끄는 BHAK가 앞으로 한국 미술가에서 그런 창조적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