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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안아주기│최연호 지음│글항아리

이 책에는 ‘소확혐(小確嫌)’이란 신조어가 나온다. 소확혐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의 ‘소확행’에서 착안해 저자가 지어낸 말. 행복하다는 뜻의 ‘행(幸)’ 자 대신 ‘싫어할 혐(嫌)’자를 썼으니 소확혐은 ‘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을 뜻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주 사소해 보이는 나쁜 기억, 그러니까 소확혐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람의 몸과 마음을 손상하는지를 짚는다. 이쯤 되면 저자가 심리학자나 신경정신과 의사일 거라고 짐작하겠지만, 뜻밖에도 소아 소화기 영양 분야를 전공한 대학병원 의사다.

저자가 ‘나쁜 기억’에 대해 천착한 건 25년 넘게 소아환자를 진료하면서 아이들의 고통이 진짜 질병이 아니라 아이의 과거 경험과 기억에서 비롯된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고 느끼면서부터다. 마음의 상처가 실제 몸의 증상으로 드러나는 이른바 ‘신체화 장애(somatization)’ 얘기다. 아이가 앓는 복통이 물리적인 신체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라 두렵고 나쁜 기억에서 유발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환자의 증상이 치유되는 과정에서 나쁜 기억이 간섭하는 패턴을 관찰하던 저자가 다양한 방면으로 시선을 확장하면서 얻은 결과물이다.

저자는 개개인의 경험을 넘어 사회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들여다보면서 인간 행동을 분석한다. 이익에 따른 기쁨보다 손실에 따른 고통이 더 크다는 심리학 이론 ‘손실기피’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꺼내놓는가 하면,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고전적 실험 연구로 객관적 이득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손실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못하는 손실기피 성향을 설명하기도 한다. 저자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는 건 풍성한 예화와 다양한 실험이다.

실타래처럼 풀려나오는 예화만으로도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산불 예방정책이 옐로스톤국립공원 대화재를 일으킨 이유, 아이가 이물질을 삼키면 부모 중 누구의 책임일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휴지 사재기 광풍이 벌어진 이유, 에어프랑스 비행기가 기수를 하늘로 향한 채 추락한 까닭…. 이런 흥미진진한 질문을 통해 저자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고, 그게 어떤 생각으로 이어져서 어떤 상황으로 귀결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치유다. 나쁜 기억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좋은 기억을 주입하거나, 두려움 대신 믿음을 갖는 방법 등의 조언을 얻을 수 있다. 368쪽, 1만8000원.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