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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쓰레기의 철학

목재는 책상 아닌 쓰레기로 현실화… 결국 목적·형상 파괴돼 사물성이 사라진 상태가 종착점
쓰레기의 존재론을 사유할 수 없다면 손에 든 채 지구 어디에 감춰야 할지 두리번거리는 운명 피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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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장은 해답을 찾기 어려운 절망적인 곳이다. 코로나 시대엔 절망이 더욱 깊어진다. 코로나는 한편으로 인간을 땅에 묻고, 다른 한편으로 일회용품 쓰레기의 무덤을 무섭게 쌓아 올린다. 죽은 인간과 죽지 못하고 쌓여 있는 쓰레기가 이 질병의 전리품이다.

쓰레기 수거장으로 나가본다. 오늘은 캔을 수거하는 곳에 누가 우산을 넣어뒀다. 우산살이 쇠니까 음료 캔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유사성의 상상력과 안일함이 작용한 까닭이다. 페트병의 비닐은 제거하고, 스티로폼 용기는 씻어서 버려야 하지만 너무 어려워서인지 그대로이다. 비닐류엔 종이 스티커 등이 붙어 있어 재활용될 수 없고, 종이박스엔 테이프가 그대로 붙어 있다. 과일 포장지는 정체가 너무 모호한데, 고민해 봤자 그냥 재활용이 안 되는 운명이다. 어느 날, 이 모든 난관을 뚫고 재활용 쓰레기를 제대로 분리한다고 해도 실제 재활용 업체에서 부활의 기쁨을 나눠줄 수 없는 쓰레기가 부지기수임을 알게 됐다. 한마디로 쓰레기는 버리는 사람도 치우는 사람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낯선 존재’다.

오래도록 철학도 쓰레기에 대해 무지했다. 쓰레기는 ‘존재’지만, 인간의 가장 오래된 지혜 가운데 하나인 ‘존재론’은 쓰레기를 사유할 수 없었다. 쓰레기의 존재론은 불가능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존재자는 형상, 질료, 목적, 작용이라는 네 가지 원인을 통해 설명돼왔다. 제작된 사물, 예를 들면 항아리의 경우, 그것을 만드는 장인(작용)은 특정한 용도에 맞춰 질료를 선택하고 필요한 형태로 제작한다. 즉 물을 담기 위한 용도에 따라 흙(질료)을 빚어 항아리를 만든다고 했을 때, ‘물을 담는 용도’가 항아리가 존재하는 ‘목적’이 되고, 또 항아리에 물 담기 알맞은 형태를 부여하는 ‘형상’이 된다. 요컨대 사물의 기능, 즉 용도가 한 사물을 사물이게끔 하는 목적이자 형상이다. 쓰레기는 저 용도성, 한 사물을 사물로 만들어주는 목적과 형상이 파괴된 것, 사물성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하여 쓰레기가 존재한다면, 존재론 바깥을 떠도는 유령으로서일 것이다.

또한 사물의 변화 과정에서도 쓰레기는 소외된 채 사유되지 못했다. 자연물들은 어떤 목적을 향해 성장하는가? 사과 씨 속에 잠재된 형상은 사과나무다. 사과 씨로부터 사과나무로의 성장은 저 잠재된 사과나무의 형상을 완전하게 현실화하는 과정이다. 완전하게 된 사과나무의 이후 행보는? 존재론은 저 사과나무가 죽고 쓰레기가 되는 과정은 사유하지 않는다. 썩거나 시든 과일, 즉 쓰레기는 무엇에 도움이 될까라고 ‘운명론’에서 호기심을 가졌던 철학자 아프로디시아의 알렉산드로스 정도만이 존재론 너머에 있는 쓰레기의 세계를 어렴풋이 파악했을 것이다.

존재론이 사유하지 못하지만 쓰레기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것은 레비나스가 ‘전체성과 무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듯 산업 사회가 돌아보지 않는 추하고 슬픈 것이다. “사물들은 어떤 면에서 산업 도시들처럼 존재한다. 여기서 모든 것은 생산이라는 목적에 맞춰져 있지만, 또한 가득한 매연과 쓰레기와 슬픔 자체가 존재한다. 그 사물의 헐벗음은 그것의 무용성이며 그 사물은 언제나 탁하고 적대적이며 추하다.”

이런 용도성을 잃은 쓰레기와 함께 산다는 것이 바로 현대적 삶의 고유한 특질이라는 점이 비로소 가시화된 것, 쓰레기가 진지한 사유의 대상이 된 것은 보들레르의 시대를 통해서였다. 보들레르는 시 ‘넝마주이들의 술’에서 말한다. “고달픈 살림에 들볶인 이 사람들 … 산더미 같은 쓰레기 아래 깔려 녹초가 되고 꼬부라져”(윤영애 역). 19세기 인간은 생활 쓰레기가 자신의 ‘운명’에 개입해 있는 환경임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쓰레기가 우리의 환경이라는 인식은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데, 20세기 초 T S 엘리엇은 장시 ‘황무지’에서 이렇게 템스강을 묘사한다. “강물 위엔 빈 병도, 샌드위치 쌌던 종이도 명주 손수건도, 마분지 상자도 담배꽁초도 그 밖의 다른 여름밤의 증거품 아무것도 없다. 님프들은 떠나갔다”(황동규 역). 이 구절은 템스 강변에서의 여름밤을 강변의 쓰레기를 통해 추억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버려진 해골을 손에 들고 사색에 빠졌지만, 이제 쓰레기를 들고 생각하는 현대 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현대엔 쓰레기와 더불어 생각하는 쓰레기의 사상도 등장했는데, 예컨대 베냐민은 ‘파사주’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대적 영웅의 제스처. 넝마주이에 예시돼 있다. … 대도시의 쓰레기와 폐기물에 대한 관심”(조형준 역). 현대적 영웅은 쓰레기, 즉 “더 이상 존재하기를 그친 것, 본질에서는 이미 죽은 상태에 있는 것에 대한 열렬한 관심”을 가진다. 왜냐하면 발전, 낙관 등 거짓 개념들로 이론화된 역사의 흐름이 우리의 삶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짜 역사 배후에서 진짜 삶의 흐름을 찾자면 현대의 진실인 쓰레기와 대면해야 한다.

본질을 잃은 존재인 쓰레기에 대한 저 베냐민의 사유는 아주 오래전에 인간을 쓰레기로 규정했던 사도 바울의 사상과도 닮았다. 바울은 말한다. “우리는 지금도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인간의 찌꺼기처럼 살고 있습니다”(‘Ⅰ고린도’, 4:13, 공동번역성서). 인간을 쓰레기로 규정하는 이 발상은 존재론을 발명한 그리스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바울의 독창적인 면모이다. 메시아의 새 세상을 앞에 둔 우리는 기실 종말을 향해 몰락해 가는 세상 속에서 사는 자들이기에 쓰레기인 것이다. 현재를 종말을 앞둔 쓰레기의 시간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이 종말 뒤에 구원을 가져올 메시아를 사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학에서도 쓰레기가 관심사가 되는데, 랑시에르는 현대문학 작품들의 개성이란 쓰레기를 통해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을 발견하고 있다. 그는 ‘문학의 정치’(유재홍 역)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현대는 … 모든 쓰레기가 문명의 어떤 시기의 화석이 되는, 모든 폐허가 사회의 기념비가 되는 곳이다.” ‘레미제라블’에서 “위고에 의하면 가면이 벗겨지며 일상생활의 쓰레기에 떠밀려 사회적 신분이 소멸되는 하수구는 ‘진리의 덩어리’이다.” 선사 시대의 화석이나 고대의 잔해들이 말없이 그 시대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현대의 쓰레기는 우리 시대의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일단 쓰레기가 되면, 고귀한 것도 비천한 것과 동등해지는 평등을 누린다. 사물들의 허세가 사라지고 오로지 사회를 비추는 진실의 거울만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노려보고 있다. 요컨대 쓰레기는 예술의 한 이상(理想)인 사실주의가 구현되는 사물이다.

그러나 쓰레기에 대한 이러한 명상들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시대의 철학으로서 ‘쓰레기의 존재론’을 수립하는 일이다. 사물이 태어나 최종 목적지에 이르도록 변화하는 과정에서 도태된 것으로서 쓰레기가 내쳐졌을 때, 쓰레기는 저 도태가 만드는 불가피한 ‘악’으로서 우리의 합리적 사상과 사회를 계속 위협할 것이다.

미셸 투르니에의 소설 ‘메테오르’(이원복 역)에서 우리는 쓰레기의 존재론이 어떻게 가능할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이 소설은 19세기 말부터 도시 쓰레기 처리회사를 운영하는 가문을 다루고 있는데, 이 시대는 바로 보들레르가 ‘넝마주이들의 술’을 통해 ‘쓰레기라는 인간의 환경’을 발견하던 시기에 근접한다. 그러니 투르니에의 이야기는 보들레르가 시로 다뤘던 거리 청소부들에 대한 사실적 기록이기도 하다.

한 사물의 목적인 용도를 실현하느냐의 관점에서 봤을 때, 파손된 사물이 구원받는 길은 ‘수선’밖에 없다. ‘메테오르’의 한 구절이다. “옛날에 모든 물건은 영구적으로 반듯하게 견딜 수 있도록 장인에 의해 직접 만들어진 진품이었다. … 그 진품은 유산의 일부분이었고 끝없이 수선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이게 사물을 대하는 옛날 방식이다. 이 방식은 더 이상 수선할 수 없는 사물은 쓰레기가 돼 우리 곁에 쌓이도록 방치할 수밖에 없다.

이와 다른, ‘쓰레기 자체’를 취급하는 방식이 있다. “빈 병, 납작한 튜브, 오렌지 껍질, 닭의 뼈 등이 남는다. … 그 물건들의 무한한 잠재력 앞에서 나는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핵심어는 ‘무한한 잠재력’이다. 그리스인들의 옛 존재론에서 잠재적인 것은 사과 씨 속에 들어 있는 사과나무의 형상 같은 것이고, 이 잠재적인 것의 이야기는 완전한 사과나무로 실현되는 데서 끝난다. 그리고 죽은 사과나무와 썩은 열매가, 즉 쓰레기가 존재론 바깥으로 굴러떨어진다. 그런데 저 구절은 쓰레기 자체가 ‘잠재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사물은 종말 뒤에 쓰레기로서 잠재력을 지니며 다시 잠재적인 것의 현실화(즉 재활용)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뜻이다.

결국 쓰레기의 존재론은, 한 사물의 탄생을 가능케 한 형상과 목적 자체가 ‘쓰레기라는 완성 지점’을 향한다는 것을 사유하는 일을 과제로 삼는다. 사과 씨 속에 잠재된 것의 ‘궁극적인’ 완성은 사과나무가 아니라 쓰레기다. 목재는 책상으로 현실화하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쓰레기로 현실화한다. 이런 쓰레기의 존재론에서 제작자는 상품을 형상(용도성)에 맞춰서가 아니라, 그것의 ‘죽을 운명’에 맞춰 만든다. 예컨대 최근 한 페트병은 접착성 상표 띠를 없애고, 병마개에도 비접착성 상표 띠를 부착해 개봉하면 자동으로 분리 배출되게끔 했다. 이것은 물을 담는 용도성을 현실화하기 위해 제작된 물병이 아니라 쓰레기로 완성되기 위해 제작된 물병이다. 쓰레기의 존재론에서 사물은 쓰레기로서 자신의 완성을 이루는 까닭이다. 이 쓰레기의 존재론을 가질 수 없다면, 우리는 난처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는 쓰레기를 지구의 어디에 감춰야 할까 두리번거리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용어설명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

고대의 사유는 만물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명에 몰두했다.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에 대한 다양한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4원인, 즉 질료, 형상, 작용, 목적에 관한 학설로 종합된다. 제작된 사물(도구)의 경우 그 사물의 쓰임새, 즉 용도가 형상과 목적이 된다. 그런데 제작된 사물 가운데 흥미로운 것들이 있으니 바로 이 ‘용도’를 벗어나는 데서 성립하는 사물들이다. 가령 ‘예술 작품’이 그렇다. 작품으로서의 항아리는 물을 담는 등 일체의 용도에서 벗어나는 데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우리가 다루는 ‘쓰레기’ 역시 그렇다. 용도 없음을 통해 독특한 사물이, 쓰레기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