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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작가인 시대, 대한민국 ‘글값’은 ?

20년간 택시기본료 3배·영화관람료 1.6배로 뛰었지만
아직도 장당 2000 ~ 3000원 ‘쥐꼬리 고료’ 여전
“문예지선 8000원·일간지선 2만원·사보 2만 ~ 3만원…”

원고료를 받아보기도 하고, 원고료를 줘보기도 했다. 내가 받는 원고료는, 내가(아니라 사실은 회사지만) 주는 원고료보다 낮다.

왜냐고 물으면 복잡다단한 답변이 가능하지만, 그 끝엔 이런 말이 나온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전문성 인지도를 갖춘 필자의 글은 당연히 비싸다. 그게 원고료의 세계에서도 통용되는 능력주의, 자본주의 논리다. 한데, 출세를 못 했어도 억울하진 않아야 하는 게 세상 이치 아닌가.

시작은 그랬다. 혹시 억울한 사람이 또 있진 않을까 하여. 순수하게 궁금하기도 했다. 글의 유통 채널이 다양해졌고, SNS를 통해 스타작가가 탄생한다. 한마디로 ‘온 국민이 작가’인 시대라는데, 다들 얼마나 받나. 지난 10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표한 문학 분야 실태조사 보고서와 함께, 주변 ‘글쟁이’들을 인터뷰해 재구성했다. ‘대한민국 글 값’의 세계.

◇‘너의 글 값은 만 원’…대중문화 평론가 K “20년째 내 연봉은 그대로” = 영화와 음악 등 대중문화 전반을 비평하며, 여러 매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50대 프리랜서 K. 그가 ‘체감’하는 글 값의 평균은 200자 원고지 1장당 1만 원 선으로, 20년째 동결이다.

종합물가총람(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택시 기본요금은 2000년 1300원에서 2020년 3800원으로 약 3배로 뛰었다. 영화관람료는 약 5300원에서 8400원으로 1.6배, 신문은 1만 원에서 2만 원으로 21세기에 2배로 올랐다. 처한 상황(?)이 달라 이런 비교가 다소 억지스럽지만,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20년째 글쟁이의 월급은 오르지 않았다는 말.

K는 한 달 7∼8건의 원고를 쓴다. 최근 한 문예지로부터는 장당 8000원을 받았다. 한 일간지에서는 장당 2만 원에 글을 쓴다. 그리고 인터넷 등 대부분 매체로부터는 여전히 1만 원을 받는다. 그래도 업계 베테랑 평론가인 K에겐 심사와 강연 등이 꾸준히 들어온다. K는 “심사와 강연이 있으니 그래도 생활이 가능하다”며 “수입 대비 노동력을 따지면 제일 효율이 떨어지는 건 글”이라고 했다.

기업 사보는 2만∼3만 원으로 그나마 높은 편. 하지만 그는 “1990년대 중후반만 해도 대기업 사보는 장당 5만∼10만 원까지 줬으나 지금은 오히려 떨어졌다”고 했다. 그래도 K는 글로 ‘먹고사는’ 세계에서 이만하면 살아남은 축에 속한다. 사정이 괜찮은 편. 그는 “장당 2000∼3000원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너의 글 값은 1250원’…동화작가 H “등단해도 왜 이러죠” = 올해 초 등단한 20대 동화작가 H. 글로 먹고사는 게 꿈인데, 갈 길이 멀다. 등단 후에도 청탁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H는 프리랜서로 마케팅 일을 병행 중이다. 등단 당시 H는 40장가량의 동화 한 편을 5만 원에 게재하는 상황이었다. 1장당 1250원꼴이다.

‘이게 뭔가’ 싶었는데, 다행히 등단한 문예지가 예술위 문예지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장당 7000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28만 원이 아니라 21만 원을 받았다. 동화 한 편이 30장 기준이라는 이유였다. H는 “등단 때 선배들이 ‘기뻐할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라고 한 말의 뜻을 알겠더라”고 했다. 그러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요청이 들어왔다. 에세이 작법 강의는 1시간에 7만 원, 동화 관련 강의는 4시간에 25만 원을 받았다. 수개월 동안 쓴 동화는 21만 원, 강의 4시간은 28만 원. “등단이 아니라 브런치가 제 생활을 바꿔준 셈이죠.” H는 마케팅 회사에 입사를 준비 중이다. 먹고살고, 글을 쓰기 위해서.

◇‘너의 글 값은 우리 마음’…웹소설 작가 L “더 써도, 돈 더 안 줘요” = L은 웹소설계에서 꽤 알려진 작가. 웹소설 고료 정산 방식은 기존 ‘글 값’ 시장과는 완전히 다르기에, 이것은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하고. 이번엔 역사 콘텐츠로도 유명한 L의 비소설 글 값을 다뤘다.

L은 2년 넘게 한 거대 포털 사이트에 옛사람들의 사랑과 연애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 200자 원고지 8장 분량에 책정된 고료는 10만 원이다. 1장당 계산하면 1만2500원.

그런데 이야기의 완성도를 고려하면 8장을 넘겨 늘 12∼15장 정도를 쓴다. 웹상이라 지면처럼 분량에 제약이 없어서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으나, 쓰다 보면 그렇게 된다는 건 ‘글쟁이’들이라면 잘 안다.

사이트 측은 “더 길게 써도 되지만, 고료는 더 줄 수 없다”고 했다. L은 “포털 등에서는 장수가 아니라 건당으로 원고료를 책정한다. 분량이 늘어나도 고료는 늘어나지 않는다.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글 값 산정이다”라고 했다.

◇‘우리 글 값, 어떻게 될까’ = “신인 때는 원고료를 받은 적이 없다”(시인 A) “청탁서에 원고료 금액이 안 적힌 경우도 많다”(소설가 B) “비평 30장을 쓰고 12만 원 받았다”(평론가 C) “‘우리는 5만 원밖에 못 줘요, 하실 수 있어요?’라는 식이다”(시인 D). 창작자들과의 심층면접을 통해 최근 예술위에서 발표한 문학 분야 실태조사에 따르면, 창작자 36%가 문예지에 원고를 기고하고, 원고료를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권위 있는 국내 대표 문예지들은 보통 장당 1만∼1만5000원의 고료를 주고 있긴 하지만, 10여 군데를 빼면 사정은 열악했다. 5000∼8000원대도 있고, 원고료 대신 잡지 구독권이나 심지어 묵은쌀로 받은 사례도 나왔다. 웃지 못할 ‘글쓰기’ 세계의 민낯이었다.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해 글 값에도 ‘최저임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 역시 높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물가상승을 고려해 최소한의 원고료 표준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라고 조언했다.

박동미·나윤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