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우리나라가 참여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오는 15일 정식 서명을 앞두고 있다. RCEP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의 15개국이 참여하는 거대한 지역 FTA이다. RCEP에 참여한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총합이 불참을 선언한 인도를 제외해도 전 세계 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코로나19 위기와 보호주의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RCEP 협상의 타결은 개방과 협력을 향한 진전이라 할 만하다.

RCEP는 여러 나라가 참여한 만큼 타결까지의 과정도 어려웠다. RCEP의 기원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환위기로 아시아인들은 동남아와 동북아 경제가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깨닫고 위기 극복 역시 이들 국가의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1998년 아세안+3 정상회의가 공식화했고, 아세안+3 체제는 이후 2005년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포함하는 아세안+6, 즉,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체제로 발전했다. 중국과 일본 간 주도권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2011년 아세안은 마침내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을 강조하며 아세안+6 체제인 RCEP를 제안했으며, 우여곡절 끝에 2013년 협상이 개시됐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15년 협상 종결을 목표로 협상을 시작했으나, 타결이 누차 연기돼 오다 결국 지난해 11월 인도를 제외한 15개 국가가 협정문 타결을 선언했다.

코로나19로 그 어느 때보다도 경제적 타격이 극심하고 세계화가 위축되는 가운데 RCEP 협상의 타결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경제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낭보다. 또, 우리나라 입장에서 RCEP의 타결은 주요 2개국(G2)을 넘어 신남방 핵심 국가들과의 교역 다변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신남방정책의 결실이라 할 만하다. 15일 RCEP의 타결을 기점으로 향후 한·아세안 협력 관계가 한 단계 도약할 것이며, RCEP의 협력 챕터는 아세안 등 역내국과 상호 경제 발전을 위한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RCEP는 그동안 참여국과 개별적으로 맺은 원산지 기준을 통일하고 원산지 증명 절차를 개선한다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는 기업들이 FTA 활용에 주요 애로 사항으로 지적해 온 부분을 개선한 것으로, 특히 중소기업의 FTA 활용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지식재산권 챕터가 없었던 한·아세안 FTA를 보완해 저작권·상표·디자인 등을 보호하는 규범을 포함한다. 전자상거래 챕터도 새로 도입해 변화하는 무역 환경을 반영한 최신 무역 규범을 다루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RCEP는 역내 중층적으로 형성된 FTA를 통일된 규범으로 묶는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역 가치사슬의 재편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RCEP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함께 핵심적인 메가 FTA다. 이 메가 FTA로 형성된 경제블록은 지역 가치사슬 구축의 토대가 될 것이다. RCEP는 시장 개방이나 규범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CPTPP에 비해 낮은 수준에서 합의됐지만, 문턱이 높지 않은 만큼 추후 다른 국가의 가입을 통한 영역의 확대도 가능하다. RCEP와 같은 다자간 협상 방식을 적극 추진해 역내 생산 네트워크를 더욱 효율적으로 구축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