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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수(1934~2020)

지난 6월 30일 새벽부터 세차게 비가 내리던 그날, 존경하는 아버지를 전북 고창 선산에 모시고 돌아오는 차창 너머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습니다. 생각할수록 그리움, 아쉬움, 죄송함, 그리고 고마움 등 여러 감정이 뒤섞여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언제나 5남매의 보호막이 돼주셨기에 평생 곁에서 지켜주실 줄로만 알았습니다. 늘 든든한 아버지셨기에 그리움은 더욱 큽니다.

아버지께서는 지리산 아래 자락의 지역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고, 장남이란 이유 하나로 부모 봉양은 물론 형제들 뒷바라지를 책임지셨습니다. 막냇동생이 결혼 자금이 없어 혼례를 못 치를 상황이 되자 당신도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 집안의 금반지를 모두 팔아 결혼비용으로 사용한 것 등 사연들을 하나하나 엮으면 한 권의 책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아버지께서는 우리 5남매를 가르치고자 365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그렇게 가정을 책임지는 와중에도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잃지 않으셨고 엄격한 가정교육을 중시하셨습니다. 또 신용을 목숨처럼 생각하셔서 없는 형편이지만 한 번도 등록금을 밀리거나 학교 준비물을 챙겨주지 않은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일은 과감하게 회초리를 드셨고 바른 일이 아니면 몇 번이고 지적하셨습니다.

하지만 못난 큰아들은 너무 엄격하신 아버지에게 때론 반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대학 1학년 때 아버지의 훈계에 반기를 들고 언성을 높이고 말았습니다. 늦게 귀가한 제 모습을 보고 한마디 하셨는데, 저는 술기운인지 이제 어른이 됐다는 자만심 때문이었는지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라고 큰소리를 지르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러고 들어왔는데 왠지 통쾌하기도 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던 그 묘한 감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찜찜했지만 그렇게 그 일은 잊혔습니다.

우리 5남매가 결혼을 하고 2세를 낳고 아버지도 연세가 들어 기력이 점점 쇠약해지면서 자식에 대한 엄격함도 조금씩 약해지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볼 때마다 지난날 서슬 퍼렇게 엄격하셨던 아버지가 그립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언뜻언뜻 아버지께 언성을 높였던 철없는 그때 그날이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용서도 빌지 못하고 결국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마 그날을 기억하지 못하실 테지만 저는 항상 마음에 걸렸습니다. 비로소 이제야 용서를 빕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어머니께 잘해라, 형제간에 화목해라”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우리 형제들이 약속드립니다. 다시 아버지를 뵐 그날까지 어머니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겠습니다. 생전 자주 하지 못했던 말들을 이제 가슴 속으로 진심을 담아 전해드립니다. 아버지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큰아들 용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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