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자동화가 이뤄진 공장에서 인간 대신 로봇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상자를 옮기는 가상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 AI 시대 일자리 재편

‘고용 줄어’vs‘새 업무 창출’
AI인한 비관론-낙관론 공존

롯데, 1초에 옷 1만벌 디자인
우체국, 집배원 로봇 등 도입
OECD “韓직무 32% 변화”

산업·고용정책 전환 불가피
유연한 노동 시장 구축해야

인공지능(AI) 기술로 대표되는 디지털 전환, 4차 산업혁명 등은 산업과 고용 측면에서도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놓는 대변혁을 가져올 수 있다. 인간의 일자리가 AI로 대체될 것이란 비관론과 AI 발전으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직업이 생길 것이란 낙관론이 공존하는 가운데, 어쨌든 AI 시대 업무 방식이 이전과 다르리란 것만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 정책의 대전환도 불가피하다. 특히 근로 형태와 관계없이 기존 정규직 근로자에게 맞춰진 제도를 무조건 확대하는 정책은 ‘미래의 일’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AI 활용 본격화한 산업계 = 롯데 통합 온라인 쇼핑몰인 롯데온은 최근 AI를 활용한 ‘데몬즈(de MonZ)’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AI가 인터넷으로 전 세계 의류 상품의 패턴과 색상, 소재 등을 분석해 트렌드별로 정리한 뒤, 수백만 개의 자료를 참고해 반복 스케치를 하면서 1초에 1만 개에 이르는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우정사업본부는 AI 기반 자율주행 이동우체국과 우편물 배달 로봇, 집배원 추종로봇을 도입한다. GS칼텍스는 지난달 드론과 자율주행로봇을 통한 물품 배달을 시연했다. 전남 여수시 웅천동 장도에서 생필품을 주문하자, 소호동 주유소에서 이륙한 드론이 자동비행해 바다를 건너 목적지 근처까지 날아갔다. 드론은 밑에 대기하던 자율주행로봇 적재함에 물품을 투하했고, 이어 로봇이 약 700m를 이동해 배달을 마쳤다.

◇AI발(發) 실업 대란 논란 =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11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AI를 위한 준비:인공지능이 아시아의 일자리와 역량에 갖는 의미’ 보고서에서 AI로 인한 한국의 직무 대체율을 26%로 추산했다.

2018년 LG경제연구원의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위험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시장 일자리의 43%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큰 ‘자동화 고위험군’(대체확률 0.7 이상)으로 파악됐다. 2017년 상반기 기준 전체 취업자 약 2660만 명 중 1136만 명이 향후 AI에 의해서 대체될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한 것이다. 특히 사무종사자는 86%가 고위험군에 속했다. 판매 종사자는 78%가 고위험군으로 분석됐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발표한 ‘일의 미래’ 고용전망 보고서에서 일자리의 전면 대체 가능성보다는 일의 특성이 변화될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한국의 경우 자동화로 인한 직무 대체 위험이 큰 일자리는 10.4%, 업무 수행방식에 있어 현저한 변화가 예상되는 직무는 32.8%로 예측됐다.

◇‘미래의 노동’ 시대 정책, 제대로 가고 있나 =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일자리 분야 권고 방향은 △신산업 육성 및 기존 산업 혁신을 위한 파격적 지원 △노동 관련 규범 재정립과 규제 개선 등 시스템 혁신 △사회적 협력관계 강화와 사회적 보호시스템 구축 등 3가지였다. 위원회는 특히 “정부는 민간 부문에서 자율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조율자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했는데, 현 정부 정책은 되레 민간 자율성을 제약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AI 시대에는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스마트워크’가 활성화된다. 이에 따라 더 유연한 근로시간 관련 제도가 필요하고, 보상 기준도 시간이 아닌 직무 유형과 성과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경총 주장이다. 경총은 플랫폼 기반 비즈니스 확대 등으로 근로관계 형태가 다양해짐에 따라 근로조건 변경 유연화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LG경제연구원 보고서는 “정부가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 제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되, 유연한 노동시장 구축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는 전혀 추진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규직 근로자에게 적합하게 설계된 제도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시작으로 플랫폼 사업 종사자까지 확대할 조짐을 보인다. 경총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상 재해보상 책임,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장 안전보건 책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재해 인정 기준 등은 대부분 근로자가 사업장 내에서 근로하는 것을 상정하고 마련된 것으로, 플랫폼 사업자에게 같은 책무를 지우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또 플랫폼 취업자에게 획일적으로 노동법상 근로자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성훈·곽선미·이정민·김온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