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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동 경제부 부장

기획재정부는 한국 경제와 영욕(榮辱)을 함께한 정부 부처다. 모태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탄생한 재무부와 기획처다. 재무부는 세제·국고·금융·통화·외환을 담당했고, 기획처는 1961년 경제기획원으로 확대되면서 예산과 경제개발 계획 수립을 맡았다. 1994년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됐으나, 1997년 외환위기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그 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다시 통합해 오늘날의 기재부가 됐다. 기재부는 현재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정책 당국’이자, ‘예산 당국’ ‘세제 당국’ ‘국제금융 당국’ ‘공공기관 운영 당국’ 등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다. 그래서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사령탑)’라고 불려왔다.

기재부가 오늘날의 위상을 처음 얻게 된 것은 1961년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시절이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정당성(正當性)을 인정받기 위해 경제 발전에 총력을 기울였고, 경제 관료를 중용했다. 자원도 없고, 인구도 적은 한국이 고속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국가주도 성장 모델이 필요했고, 국민 세금으로 미국과 영국 등에 유학을 다녀온 경제 관료들은 한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 뒤 정권의 부침이 많았지만, 기재부는 정권이 바뀌어도 놀라운 적응력을 발휘해왔다. 그 결과,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복지, 환경, 무역(수출입) 등에서부터 막대한 예산 뒷받침이 필요한 국방과 우주 개발에 이르기까지 기재부 공무원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 경제를 총괄하는 기재부의 권위는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해방 직후부터 우파 정권, 좌파 정권 등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도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위치를 지켜온 기재부가 왜 이렇게 됐을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신임이 예전 같지 않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여권(與圈)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리면 대통령이 기재부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전체 가계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여당 주장에 기재부가 무릎을 꿇은 것은 한 가지 예시일 뿐이다. 2023년 도입되는 주식 양도소득세 공제 한도가 갑자기 5000만 원으로 높아진 것도, 올해 4차 추가경정예산이 대규모로 편성된 것도 모두 ‘외부의 힘’이 작용한 결과다. 경제부총리는 아예 조소(嘲笑)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전세 난민’이 된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의 산증인”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주식 양도세 부과 대상 대주주 기준을 3억 원으로 낮추려다가 힘에 밀려 현행대로 10억 원으로 유지하기로 한 뒤 홍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던 것도 ‘버스 떠난 뒤에 손 든’ 코미디일 뿐이다. 경제계에서는 “기재부의 위상 추락은 한국 경제정책의 주도권이 관료에서 정치인으로 넘어가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기재부가 이번에도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줄 것인지 관심거리지만, 정치인이 주도하는 경제정책이 표(票)를 지나치게 의식해 ‘중우경제(衆愚經濟)’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