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에 빠진 기업들

집단소송제 전분야 확대 적용
징벌적 손해배상 등 입법예고
“정상적인 경영활동 어려울것”
중소·중견기업에 더 큰 피해

재계가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재검토를 요청하고 있는 와중에 이번에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정부는 23일 증권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집단소송제’와 악의적 위법행위 시 손해의 5배 한도로 배상책임을 지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재계는 정부·여당의 독주로 기업규제 법안들이 크게 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재계단체장들이 잇달아 국회를 찾아 기업 규제 법안 재검토를 요청하고 있지만, 오히려 기업 규제 법안과 내용은 더 강화되는 양상이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집단소송제 등의 법안이 시행될 경우, 경영활동 대부분이 소송 대응 등에 허비될 것으로 보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집단소송제를 전면 확대하면서 ‘증거개시제’까지 도입해 소송 남발의 부작용에 대한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징벌제도 도입으로 징벌대상이 아님을 기업이 입증해야 하는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실장도 “정부가 입법 예고한 법안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 위기 극복에 진력하는 기업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그러지 않아도 형사처벌과 행정제재, 민사소송 등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이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리스크에까지 노출된다면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렵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 사례들도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미국에서 엔진 결함 논란 관련 집단소송에서 해당 차량을 보유한 소비자에게 평생 보증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같은 엔진이 달린 차종을 구매한 국내 소비자에게도 같은 보상을 하기로 했다. 약 470만 대에 이르는 차량이 대상으로, 평생 보증 비용은 약 9000억 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지난해 2분기 1조2377억 원이었던 현대차 영업이익은 3분기에 3785억 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생길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 소송 대응 여력이 없는 중소·중견 기업들의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여야가 기업 규제 법안들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를 갖겠다고 밝혔지만, 재계는 형식적인 ‘절차 밟기’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임대환·김성훈·이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