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올해 벽두부터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킨 코로나19가 인류의 삶을 통째로 뒤흔든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세계 각국이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은 기축통화를 위세로 대규모 양적완화를 강행했고, 그 결과 주식시장은 오히려 호황이다. 유럽·일본·중국 증시도 안정적이고 한국 증시는 ‘동학개미’ 집결로 상승세가 세계 최상급이다. 억지가 개입된 금융시장과는 딴판으로 실물경제는 부문별 편차는 있지만 침체가 심각하다.

이번 위기의 특징은 산업별 편차가 크다는 점이다. 정보기술(IT) 부문 중 일부 언택트 관련 업종은 매출과 순이익이 급증해 호황이다. 항공·숙박 등 관광·여행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은 극히 부진해 실업자가 양산된다. 제조업 매출도 급감하면서 손실이 커지고 해고도 증가한다. 서비스업은 경기가 회복되면 해고자 복직을 통한 정상화가 쉽다. 그러나 제조업은 붕괴된 생산 시스템과 유통 채널 복구가 쉽지 않다. 일자리 비중이 큰 제조업 붕괴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시급하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자영업의 어려움이 더욱 심해졌고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사라져 먹고 살 일을 걱정하는 취약계층이 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정교한 복지 지원은 필수적이다. 제조업 붕괴를 막고 일자리를 지켜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저가 물량 공세가 무기인 중국 방식은 더는 지속이 어렵고 제품 및 서비스의 고급화 추세가 가속화할 것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제조업은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 고급화 경쟁에 대처해야 한다.

매출 감소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해고를 막으려면 노사 협력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 삭감을 합의해야 한다. 기존 작업 시간을 고집하면 과다한 생산량으로 재고가 쌓이게 마련이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 가격 할인을 통한 밀어내기도 어렵고 자금 경색도 심해진다. 한국 제조업의 도산이 빈발한 이유는 부채 비율이 높은 재무 구조 취약점도 있지만, 경직적 노사관계로 근로시간 및 임금 조정이 불가능해 억지 생산으로 쌓인 과잉 재고가 자금 압박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노사 협력으로 재고 누적을 막고 신제품 R&D 투자에 역량을 집중하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을 이룰 수 있다.

기업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첨단 분야에 대한 R&D는 매칭 펀드 방식으로 정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국가재정을 구호에 소진하고 제조업 붕괴를 방치하면 경기 회복 이후 국제 경쟁에 나설 무기가 없어진다.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가 살길은 세계 최고의 제품을 끊임없이 내놓는 기술 혁신뿐이다. 정부·여당은 뉴딜펀드 조성을 통한 기업 자금 공급을 계획하지만, 영리사업은 주인 있는 민간 기업의 자율성이 확보돼야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자금줄을 장악한 정치권력이 경영을 간섭할 게 뻔한 상황에서 민간의 창의가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다.

제조업 투자자금 확보를 위한 유상증자 활성화도 필요하다. R&D에 정부 예산을 지원하면 수혜 기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투자자가 늘어날 것이다. 그 기업이 신제품 개발에 성공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늘고 증자에 참여한 주주의 배당금과 주가 차익도 늘어난다. 정부 지원에 의한 R&D가 성공하면 법인세와 신규 고용에 따른 근로소득세, 주주 배당소득세로 지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 통신비 2만 원씩 나눠주는 단견보다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원천 기술 개발에 정부 예산을 효과적으로 투입하는 장기적 안목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