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도운 논설위원

백서(白書)는 표지가 하얀 책자를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 정부가 발간하는 보고서의 표지가 흰색이어서 whitepaper로 불렸는데, 아예 정부 기관에서 발간하는 공식 보고서, 더 나아가 종합적인 조사 보고서를 일컫는 용어가 됐다. 영국 의회에서 발간하는 보고서는 표지가 파란색. 따라서 청서(靑書·bluepaper)로 불린다.

우리 정부도 백서를 발간한다. 임기를 마친 대통령의 정부는 재임 중 정책을 정리한 방대한 분량의 국정 백서를 발간하고 있다. 외교부는 매년 국문과 영문으로 외교 백서를 제작하는데, 정보기술(IT) 강국답게 2013년부터는 전자책으로도 발간한다. 국방부도 대 국민 정책 홍보 등을 위해 1967년부터 백서를 냈는데, 초기에는 불규칙하게 나왔지만, 2008년 이후 격년 발행이 정착되고 있다. 발간 때마다 ‘주적’ 표현이 논란이 됐다. 이와 함께, 기획재정부는 경제 백서, 환경부는 환경 백서, 노동부는 노동 백서를 발간하는 등 조선왕조실록을 보유한 나라답게 정부 기록 문화가 잘 발달해 있다.

역사적으로, 종이가 귀했던 시절 비단(帛)에 쓴 글을 백서(帛書)로 부르기도 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천주교 신자 황사영이 중국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쓴 청원서가 유명하다. 2자(약 60㎝)가량 되는 명주 천에 무려 1만3311자를 썼다고 한다.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흑서(黑書·blackpaper)라는 용어도 있는데, 공개해서는 안 되는 대외비 문서를 지칭한다. 비밀은 아니지만, 비공식적으로만 열람할 수 있는, 출판 정보가 나타나지 않는 문서는 문헌정보학계에서 회색 문헌이라고 지칭한다.

최근 출판계에 때아닌 백서·흑서 돌풍이 불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발간한 ‘검찰 개혁과 촛불 시민’이라는 책자가 조국 백서, 반대로 조 전 장관 및 문재인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출간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는 책자가 조국 흑서로 불린다. 엄밀히 말하면 백서와 흑서가 아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전자는 연두색이니 연두서, 후자는 청색이니 청서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명칭과는 상관없이 둘 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특정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진영 간, 진영 내 갈등이 불러온 ‘웃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