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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앵 작곡가 베를리오즈

의사 부친 권유로 의대 갔다가
글루크의 오페라 보고 큰 감동
24세 파리음악원 늦깎이 입학

‘오필리아’役 女優에 구애좌절
시련 딛고 불후의 교향곡 창작

‘여자는 자신을 웃게 한 남자를 잊지 못하고, 남자는 자신을 울게 한 여자를 잊지 못한다’. 젠더 감수성 떨어지는 소리라고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이 출처 불분명한 명제에 필자는 격하게 공감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남자가 잊지 못한다는 첫사랑의 그녀들은, 적어도 필자의 그녀는 웃음 대신 눈물을 안겨주고 떠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슈만의 가곡집 ‘시인의 사랑’이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같은 ‘찌질한 실연남’들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눈물까지 흐르진 않지만 적어도 가슴을 죄어오던 그때의 아픔이 되살아난다. 시인의 사랑도 좋고 겨울 나그네도 좋지만 만약 시간을 거슬러 과거 실연의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조금은 다르게 이겨내 보고 싶다. 파리지앵 작곡가 베를리오즈처럼 쿨하게 말이다.

헥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1803∼1869)는 의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의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인체를 해부하는 것이 가장 싫었다던 베를리오즈는 어느 날 글루크의 오페라 ‘터리드의 이피제니’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아 의사 대신 작곡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의대를 졸업한 21세 때부터 작곡가가 되기 위해 음악 공부를 시작했지만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수업을 위해 24세의 늦은 나이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게 된다. 미래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포기한 아들을 괘씸히 여긴 베를리오즈의 아버지는 그에게 지금껏 해오던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는다. 이 가난하고 열정만 가득한 늦깎이 작곡과 학생은 어느 날 연극 극장을 찾는다. 1827년 당시 파리에는 영국에서 온 연극단의 ‘햄릿’ 공연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 공연에서 베를리오즈는 자신의 장래를 바꾸게 한 글루크의 오페라처럼 강력한 운명의 힘을 느끼게 된다. 바로 ‘오필리아’역을 맡은 여배우 해리엇 스미스슨(Harriet Smithson)에게서 말이다. 베를리오즈는 자신보다 열 살 연상의 스타 여배우에게 운명적 사랑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스미스슨은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10세 연하 늦깎이 학생의 스토킹에 가까운 구애를 받아 줄 여배우가 아니었다. 무시에 가까운 그녀의 외면은 베를리오즈에겐 실연의 아픔을 넘어선 절망과 분노에 가까운 마음이었지만 그는 ‘찌질하게’ 방구석에서 훌쩍이거나 울부짖지 않았다. 대신 이 아픔과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기로 결심하고 작품의 창작에 매진하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정열적인 사랑을 암시하는 ‘어느 예술가의 생애의 에피소드’라는 부제를 단 이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환상 교향곡’이다. 베를리오즈는 이 작품을 통해 실연의 아픔을 이겨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출세작이자 낭만파 음악을 대표하는 교향곡을 남기게 됐다. 이 작품이 대히트를 친 덕에 그를 외면했던 여배우 스미스슨마저 후에 공연장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둘은 다시 교제하게 됐고 후에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다.

안우성 클래식 월담 대표

오늘의 추천곡 : ‘환상 교향곡’

기존의 질서를 파괴라도 하듯 일반적 교향곡의 형태인 4악장을 벗어나 5악장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교향곡에 줄거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그 내용을 암시할 수 있게 하는 표제음악(Program music)이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곡이다.

내용은 어느 젊은 예술가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아편을 과다 복용해 자살을 기도했는데, 하필 그 양이 치사량보다 살짝 적었던 때문에 혼수상태 속에서 자신이 짝사랑하던 여인과 관련해 온갖 기괴한 환각을 경험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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