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개편 방안을 둘러싼 출판계와 정부의 갈등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가 공식 출범하고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는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20일에는 대한출판문화협회 주최로 관련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출판·문화계 대표 단체들이 이 정도 규모로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출판·서점업계에서 이 사안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 업계의 충돌이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하는 모습을 보며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이번 논란이 3년에 한 번 돌아오는 도서정가제 개편 시한이 11월 20일로 다가온 데서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논쟁이 도서정가제에만 머무는 게 바람직하냐는 얘깁니다. 정부와 업계는 지난달까지 16차례의 논의 끝에 상당 부분 의견을 모았지만, 전자출판업계를 도서정가제 대상에서 뺄지 여부가 쟁점이 되면서 격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그러나 출판·서점업계 사정을 잘 아는 적지 않은 사람은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도서정가제만으로 출판·서점업계의 위기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은 제쳐 두더라도 낙후한 책 유통구조, 반복되는 도매업체의 위기 등 고질적인 문제로 인해 출판·서점업계는 항상 언제 꺼질지 모를 살얼음판 위를 걷는 처지였다는 겁니다. 실제로 지난 6월 국내 책 도매업체 2위 인터파크송인서적이 회생 절차에 들어갔을 때도 피해를 본 출판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섰지만, 고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과 부동산 정책 논란 등에 밀려 제대로 주목받지도 못한 바 있습니다.

기왕 도서정가제를 놓고 논의의 장이 마련된 만큼, 보다 근본적으로 ‘지식·콘텐츠 생태계’ 발전을 위한 민·관 종합대책을 마련하는 데까지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출판·서점업계가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확보하는 게 출발점이 돼야 합니다.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에 유리하게 돼 있는 도서공급률(정가와 대비해 출판사가 서점에 납품하는 책값의 비율)을 일원화하고, 공공 유통체계 구축 등을 통해 책 유통망을 투명화·선진화하며, 공공 도서관과 장서를 대폭 늘리는 것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될 수 있습니다. 정부도 여타 산업을 대할 때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출판·서점 분야는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의 지식수준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