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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 前 駐유엔 대사

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에 관해 이렇다 할 메시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가 도를 넘어 큰 공분을 사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과 안익태 작곡가에 대해 친일, 민족 반역자 누명을 씌우고 지난 75년의 역사를 전면 부정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1년9개월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제는 그동안 적폐청산의 이름 아래 벌려 놓은 것들을 수습하고 국민 통합의 길로 바뀔 때도 됐건만, 오히려 사회 분열과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적폐청산도,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바로 잡는 방법 대신 지난 보수 정권 사람들을 처벌하는 데만 과도히 집중해 왔다. 적폐청산은커녕 퇴행과 신(新)적폐의 누적이다.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을 고민해야 할 나라에서 애꿎은 과거만 정권 입맛대로 계속 재해석돼 바뀌니 이제 우리는 과거 불확실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굽은 가지를 바로 잡고자 반대 쪽으로 휘게 하다가 지나쳐서 오히려 가지를 꺾는 그르침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중국의 격언 교왕과정(矯枉過正)의 뜻이다. 과도해서 잘못된 적폐청산의 부작용을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다.

민족정기 선양과 선열 독립정신 계승에 앞장서야 할 광복회장은 치사한 자신의 정체성은 외면한 채 친북·반미·반일의 이념 아래 민족과 반민족으로 나라를 편 가르면서 의미도 모호하게 대한민국을 광복하라고 한다. 말하건대, 광복은 75년 전에 이미 이뤄지고 대한민국은 그때 이미 섰는데, 분열을 조장하는 이런 인사들로 인해 국민이 아직도 제대로 서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와 인권의 헌법적 가치 속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인사들이 오히려 노구의 구국 영웅을 파묘(破墓)니 사형이니 하면서 모욕하고 기본질서를 흔들면서 분열을 심화시키고 국민을 가치의 혼돈 속으로 밀어 넣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또한 국가 안보를 교묘하게 평화와 대척되는 개념으로 설정하고 국민에게 안보냐 평화냐의 잘못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 문제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면서 북한으로부터는 천대와 모욕을 감수한 채 쌀이든 의료품이든 수해물자든 기회만 있으면 주겠다고 제의한 뒤 영락없이 거부당하는 이 패턴은 언제 고쳐질 것인가. 주는 쪽이 제발 받아 달라고 구걸하는 경우가 이 세상에 또 누가 있겠는가. 북한에 대해서도 통일의 파트너이자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적(敵)이라는 이중성을 고려한 중장기적 전략 아래 입체적 접근을 해야 함에도 매번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니 모든 부문에서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이다.

김정은이 8·13 노동당 중앙위 회의에서 홍수 피해와 코로나19 방역을 2개의 위기라고 표현한 것은 취약한 내부 상황의 노정이다. 국제사회의 예측대로 올해 북한 경제가 -8.5%로 추락한다면 유엔의 대북 제재가 강화된 2017년 이래 경제 규모는 20% 정도 축소되며, 정권 지탱 능력이 그만큼 저하된다는 의미다. 31년 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이르는 과정도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가 갑자기 상황이 진전됐다는 역사가의 분석이 있다. 현재의 취약한 상황에서 북한도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 지혜로 북한을 다뤄 나가야 한다. 지금처럼 내민 손을 깨물어도 허허 웃고 마는 태도는 전혀 전략적이지 않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나라를 계속 분열로 이끌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