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문화원 점거 배후 박선원
예산·조직관리 등 총괄업무
박지원·서훈 힘겨루기 전망

광주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 배후로 활동했던 박선원 국가정보원장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에 내정되면서 미국과의 정보 공조 및 휴민트(HUMINT·인적정보) 약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정원 기조실은 직접적인 정보수집 기능은 없지만, 예산과 조직관리를 총괄해 사실상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대북 정보수집보다 대북접촉에 더 많은 예산과 인원이 집중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5일 국정원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국정원 인사를 통해 1차장에 김상균 전 2차장을, 2차장에는 박정현 국정원장 비서실장, 3차장에는 김선희 국정원 정보교육원장을 각각 임명했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으로 일한 후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장 보좌관으로 일했던 박 실장이다. 박 실장은 ‘86세대 운동권’ 출신으로 반미 학생운동 조직인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에 속했었고, 1985년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으로 수감 생활을 한 전력이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준비과정에 참여하는 등 대북접촉 창구 역할을 했다. 그에게 국정원 ‘금고지기’인 기조실을 맡긴 것은 정보기관의 정책 방향을 정보 수집에서 대북 접촉으로 돌린 것으로 풀이된다. 반미 성향이 뚜렷한 인사를 국정원의 핵심에 배치하면서 미국과의 정보 공조 및 휴민트 약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신범철 한국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문재인 정부는 박 실장을 임명하면서 미국과의 관계 우려에도 대북 접촉에 올인(다걸기)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며 “북한과 북·중 접경지대에서 활동하는 휴민트 역시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지원 국정원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 간의 대북정책 주도권 다툼 양상도 전망된다. 이번 인사에서 북한·해외 파트 모두를 책임지게 된 김 1차장은 국정원 내 대표적인 서 실장 라인이다. 국정원 안팎에선 서 실장이 지난 7월 초 내부 인사 정리를 한 후에 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서 실장이 김 1차장을 통해 국정원의 대북 물밑접촉 과정까지 직접 챙길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