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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배 정치부 차장

“감사원같이 중요한 감찰기관은 강골(强骨) 공무원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내가 옷을 벗을지언정 부당한 지시나 압력은 이겨내겠다는 공직자가 많아야 국민이 믿습니다.” 2017년 12월 최재형 감사원장 청문회에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 원장에게 이같이 주문했다. 최 후보자는 “유념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감사원이 청와대에 하는 것을 보면 김수희 선생의 노래(애모)가 생각난다. 청와대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2018년 10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당시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감사원의 4대강 사업 4차 감사 등을 거론하며 이같이 최 원장을 몰아세웠다. 지금은 국정원장이 된 박지원 의원을 포함해 당시 야당 의원들은 감사원이 “정권의 눈치만 본다”고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대통령 국정 운영 철학과 맞지 않으면 감사원장을 사퇴하라.” 감사원장 임명 후 2년 반가량 지난 2020년 7월 29일 국회 법사위에서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놓고 최 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소병철·김진애 의원은 감사원장 ‘탄핵’이라는 단어까지 들고나왔다. 최 원장이 지난 4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직권 심문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계획을 두고 ‘대선에서 41%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대통령이 시킨다고 다 하느냐’고 말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여권이 이날 최 원장을 3시간 동안이나 겁박하고 나온 것은 조만간 발표될 월성 1호기 감사 결과가 정권이 원하는 그림과 다르게 나올 것을 알면서부터다. 인사청문회 때 “미담제조기(박홍근 민주당 의원)”라며 덕담이 오고 갔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문재인 정권이 정권에 칼을 겨눈 윤석열 검찰총장이 ‘적군’인지는 금방 알았는데, 최 원장마저 ‘실패한 인사’란 사실은 최근에야 알아차린 모양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인 셈이다. 청와대는 ‘서초동의 이성윤(서울중앙지검장)’처럼 ‘삼청동의 김오수(전 법무부 차관)’를 생각했던 것 같다. 한 자리가 공석인 감사위원을 놓고 청와대는 친여권 성향의 김 전 차관을 앉혀 최 원장을 포위하려 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서초동에서 윤 총장을 견제하는 이 중앙지검장 카드가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최 원장은 감사원장의 위원 ‘제청권’으로 청와대에 맞섰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SNS에 양건 전 감사원장이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추천한 위원 후보를 선거 캠프 출신 인사라며 제청을 거부하고 물러난 사례를 언급하며 ‘박근혜 정부 데자뷔’라고도 비판했다.

감사원법 제2조 1항은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감사원 직무가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과 별개로 독립적으로 수행된다는 의미다. 최 원장은 이 규정대로 해왔고, 의원들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다. 부당한 지시나 압력을 이겨낸 ‘강골’이었고, ‘청와대 앞에서 작아지지도 않았다’. 윤 총장과 최 원장은 현 정부로서는 ‘대표적 인사 실패’ 사례인 셈이다. 여당 의원들은 ‘사람을 잘 못 본’ 대통령과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 ‘아군’인지 ‘적군’인지 제대로 검증 못 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따지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