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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문화부장

지난 며칠간 문화계를 뜨겁게 달군 소설가 김봉곤 사태는 일단 작품 회수·환불과 문학상 반납으로 일단락됐지만, 많은 생각 거리를 남겼다. 이번 파문은 자신이 소설에 등장하는 C 누나라고 밝힌 지인이 올해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수상작 ‘그런 생활’에 자신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인용돼 수치심과 자기혐오로 고통받았다고 토로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또 다른 지인이 작가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에 자신의 메시지가 그대로 옮겨져 원치 않는 아우팅(성적 취향을 동의 없이 드러냄)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사태는 창작 윤리 문제로 번지며 일파만파 확대됐다. 하지만 이제까지 창작 윤리라면 대부분 ‘표절’ 관련이었던 것과 달리 이번 사태는 ‘사생활 침해’라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꽤 ‘시대 징후적’이다.

물론 이전에도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옮기진 않더라도 소설에 누구인지 알 만한 개인 이야기를 쓴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그저 아는 사람들의 뒷담화로 소화될 뿐 작가와 독자까지 가세한 이런 반발은 없었다. 이번 파문은 특별하다고 여겨져 온 예술과 창작도 세상의 모든 특권과 함께 깨지고 있는 동시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개인권리에 대한 감각이 갈수록 강력하고 예민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의 가치가 한 사람의 삶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소설가 김초엽의 발언은 이 같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단정할 순 없지만 메시지, 톡 등 일상의 대화를 그대로 ‘복붙’할 수 있는 매체 시대가 만든 사건이기도 하다. 만약 원고지 10페이지 분량의 대화를 기억에 의지해 옮겨야 했다면 작가의 자의식이 들어가지 않을 리 없다. 또 갈수록 현실과 허구, 창작과 일상이 구분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콘텐츠가 되는 시대, 자기 삶을 그대로 옮기겠다는 ‘오토픽션(私小說)’ 기법도 생각해 볼 문제다. 현실과 허구의 모호한 지점에서 자신을 드러낼수록 자신과 일상을 공유하는 많은 타인의 삶을 침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작가는 “고유의 삶과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채 타인을 들여놓은 제 글쓰기의 문제점을 뒤늦게 깨닫고 반성한다”며 “부주의한 글쓰기가 가져온 폭력과 피해에 다시 한 번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파문은 창작 동네의 이야기지만, 타인(피해자)에 대한 무감각한 폭력, 타인에 대한 낮은 감수성에 대한 보편적인 성찰로 확대해 볼 수 있다. 심각성 면에서는 비할 바 아니지만, 말로는 페미니즘을 외치면서 직원을 성추행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 그를 두둔한 진보 인사들,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에게 “네가 예뻐서 그랬다”고 말한 숱한 사람들은 바로 젠더 감수성을 넘어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보여준다. 미국 철학자 토드 메이는 책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철학’에서 모두가 공감을 외치지만 정작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우리의 옳음을 스스로에게 반사하는 메아리 방에서 살아가려 한다. 우리는 정직성을 우리들 사이에서만 발휘하는 공동체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며 이렇게 조언한다. “우리가 남들의 얼굴을 쳐다봄으로써 그들이 저마다 살아가야 할 삶이 있는 존재임이 드러나는데 그런 현상을 똑바로 인식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