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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세상을 이끌다 보니 말도 그에 이끌리는 일이 많다. 최근의 TV 예능 프로그램 덕에 신분상승을 한 말을 꼽으라면 ‘삼시세끼’와 ‘잡(雜)’이 있다. 방송 이전에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던 ‘삼시세끼’가 이후에는 준비 과정부터 먹는 것까지 흥미의 대상이 됐다. 알아봤자 쓸데없는 잡스러운 지식도 어느새 다양한 분야의 깊이 있고도 흥미로운 지식으로 바뀌기도 했다.

음식 이름의 역사를 살펴보면 ‘잡’은 진즉에 신분상승을 이뤘다. 쌀이 귀하던 시절 ‘혼분식’의 재료가 바로 잡곡이었다. 쌀이 순수한 곡식이라면 보리, 밀, 콩, 조, 옥수수, 귀리 등이 잡스러운 곡식 대접을 받았다. 종이 아예 다른 작물이니 순(純)과 잡(雜)을 따질 수 없지만, 쌀과 밥에 대한 집착이 부른 결과다. 그런데 어느 순간 쌀은 오히려 푸대접을 받게 됐고 잡스러운 곡식들이 우대를 받게 됐다.

쌀이 남아돌게 된 세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건강에 대한 관심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방앗간에서 깎고 또 깎아낸 백미를 최고로 치다가 건강에 좋다고 왕겨만 살짝 벗겨낸 현미가 각광을 받게 된 것도 그렇다. 탄수화물이 비만과 성인병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갖가지 다양한 영양소를 갖춘 잡곡이 쌀보다 더 비싼 대접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순수함에 대한 집착은 곧 편협함으로 이어질 수 있고 잡스러운 것에 대한 수용은 다양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순과 잡을 따지는 것은 여러모로 문제를 일으킨다. 흰색 피부를 순으로 보고 유색 피부를 잡으로 보는 것은 인종차별을 유발한다. 피의 순수함을 고집하다 보면 집단 이기주의를 초래하게 되고 동종 번식에 따른 유전병을 유발하게 된다. 먹을 것 역시 그렇다. 본래 순과 잡을 따질 수 없는 곡물에 굳이 잡곡이란 범주를 만들어 두고 쌀에 집착하는 것은 외려 건강을 해친다. 요즘은 잡이 대세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