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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환(1938∼2011)

2011년 여름 아버지의 교통사고는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이었다. 아버지의 마지막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슬프고 황망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1938년 남도의 농촌에서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열심히 일해서 땅을 늘리거나 도회지에서 새로운 밥벌이를 찾는 두 길이 있었지만, 두메산골에서는 어느 쪽도 만만치 않았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아버지는 중고등학교 때 매일 3시간 이상을 걸어서 읍내의 학교에 다닌 끝에 졸업장을 받았다. 예비장인으로부터 “자기 앞가림은 하겠다”는 평가를 받고 결혼한 것이 스물셋.

그 무렵 교육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입대 영장이 나오는 바람에 최전방인 강원 인제로 먼 길을 떠나야 했다. 복학 후에도 난방이 되지 않는 추운 방에서 겨울을 지내며 어렵게 졸업한 후에야 첫 발령을 받았다. 이후 건강에 온 적신호로 1998년 명예퇴직할 때까지 30여 년간 교직에 종사하셨다. 은퇴 후에도 틈틈이 복지관 교사로 계속 활동하던 어느 날 아버지는 갑작스레 떠나셨다. 우리 시대의 여느 아버지처럼 집안의 무거운 짐을 감당하면서 스스로 앞길을 헤쳐온 아버지의 삶은 빠른 도시화와 산업화를 거친 격동의 우리나라 현대사와 많이 닮았다.

아버지는 말씀이 많지 않고 때로는 원칙을 중시해 매를 들기도 하셨다. 자상하거나 잔정이 있지는 않았지만 남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도 못하셨다. 결국 집안의 장남이 떠안을 크고 작은 일들은 고스란히 맏며느리인 어머니의 고생으로 남았다. 인생 선배인 아버지와 진지한 얘기를 자주 나누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는 매사에 자식들을 묵묵히 믿고 성원을 보내는 분이셨다. 하지만 학업과 결혼 같은 집안 대사를 치르면서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자식들에게 충분히 지원하지 못한 것을 늘 미안해하셨다. 가진 것들을 하나씩 자식들에게 내주면서도 더 주지 못한 것을 마음의 빚으로 안고 계셨다. 특히 장남에게는 더 그랬던 것 같다.

처음 집을 떠나 대학원 기숙사에서 지낼 때, 군에서 고된 훈련을 받으며 전방에서 근무할 때, 30대 후반에 어린 아들을 두고 영국에서 혼자 연수를 할 때 내게 힘이 된 것은 아버지의 편지였다. 소소한 집안 소식과 품 안을 떠난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전하고 건강과 식사, 공부와 생활 관리까지 꼼꼼하게 당부하면서도 마지막 말씀은 늘 비슷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들을 지켜보던 아버지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어느새 내 인생의 버팀목이 됐다. 내년이면 돌아가신 지 10년이다. 여전히 아버지의 부재가 실감 나지 않는다.

1990년대생인 아들 녀석이 벌써 군에도 다녀와 복학했다. 아들을 키울수록 아버지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게 된다. 어려운 시절, 아버지가 헤쳐온 길은 당시로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가끔 아버지가 된, 이제는 아들의 인생 선배가 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버지를 똑 닮은 내가 보인다. 닮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성격까지 그렇다. 아버지가 내 마음속에 이렇게 남아 있는데, 지금 나는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일까?

내가 먼저 아버지에게 다가갔으면 좋았을 걸, 가까이 계실 때는 아버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기일이 다가올수록 생전에 잘해드리지 못한 것들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아버지! 거기에서는 편안하신지요? 그렇게 갑자기 가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요? 다시 뵙게 되면 속마음 모두 터놓고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밤새도록 나누고 싶습니다.

장남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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