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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 앨프리드 델러

보이 소프라노로 성가대 활동
르네상스·바로크의 음악 알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기품
‘델러리즘’이라는 신조어 탄생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표현’이라는 주제는 평생의 화두다. 연주자의 멜로디는 달콤하면서도 유려해야 하고 리듬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어야 한다. 충분히 연마되지 않은 우유부단한 멜로디와 리듬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음악학도가 이즈음 가장 많이 지적받는 포인트가 있으니, 바로 ‘오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너무 우유부단하게 표현해도 안 되지만 과장 역시 금물이다.

연습 중 정체의 순간이 찾아올 때면 처방전처럼 찾아 듣는 음반이 있다. 영국 출신의 ‘메일 알토(Male Alto)’ 앨프리드 델러(Alfred Deller·1912∼1979)다. 14세기에 등장한 카운터테너는 18세기 전성기를 마지막으로 바로크 오페라의 히로인 ‘카스트라토(거세 가수)’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며 서서히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1940년 영국에서 카운터테너를 부활시킨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델러리즘’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델러다.

영국 마게이트에서 태어난 델러는 어려서부터 보이 소프라노로 성가대에서 노래했다. 변성기 이후에도 세심한 발성 연습으로 맑은 음색을 유지할 수 있었고 타고난 재능이 더해져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도 독학만으로 여성의 알토를 노래할 수 있게 됐다. 캔터베리 대성당(1940∼1947)에 이어 세인트 폴 성당(1947∼1962)에서 합창 단원으로 노래하고 있던 델러의 목소리를 우연히 작곡가 마이클 티펫(Michael Tippett)이 듣게 됐고, 델러의 중성적인 음색과 복받쳐 오르는 듯한 풍부한 음악성에 매료된 티펫은 런던에서 델러 독창회를 열어주면서 그를 세상에 소개하게 된다. 델러는 사장됐거나, 간간이 교회에서나 연주됐던 고음악을 발굴하고 녹음함으로써 잊혔던 카운터테너의 존재를 온 세상에 알린 가수다. 그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의 레퍼토리까지 부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초기에는 델러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19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아직 카스트라토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델러도 카스트라토처럼 거세 가수가 아닐까 하는 오해로 사람들이 불쾌감을 내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객들조차도 그의 노래를 듣고 나면 모두 매료될 수밖에 없었고 그가 다시 불러내는 옛 영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통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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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러의 노래에는 매우 특별한 지점이 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성량이나 음색은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온전히 그의 목소리에 실려진 음악만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이끈다. 버터 바른 기름진 목소리도 아니고 쭉 뻗어 나가는 고음도 아닌데 서서히 빠져드는 느낌, 소름이 돋고 감정이 복받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구체적인 표현이 불가능한 마성의 감동을 사람들은 ‘델러리즘’이라고 한다. 델러를 통해 내면의 깊이와 기품이 있어야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는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안우성 클래식 월담 대표

[ 오늘의 추천곡 ]
‘Oedipus’ 작품 583

헨리 퍼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17세기 후반 영국 최고의 시인이자 극작가 ‘존 드라이든’(John Dryden·1631∼1700)과 극작가 ‘너새니얼 리’(Nathaniel Lee·1653∼1692)의 연극 ‘Oedipus(오이디푸스)’의 부속음악(Incidental music)에 담겨있는 작품이다. 극장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속음악은 당대의 카스트라토를 위해 쓰인 이탈리아 바로크 오페라와는 달리 남성 알토를 위해 쓰였다. 카스트라토의 그늘에 가려 18세기 이후 사라진 ‘메일 알토’를 복원하려 노력했던 델러에게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였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