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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 정치학

슈퍼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의 전제정(專制政)’이라는 위험한 길로 접어들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3일 제1 야당인 미래통합당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일방적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열어 ‘한명숙 구하기’라는 반(反)의회적이고 반법치적인 행태를 연출했다.

대법관 전원이 유죄로 인정한 한명숙 전 총리 불법 자금 수수 사건에 대해 “한 전 총리 재판은 공판 중심주의의 후퇴” “판사들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미약하다”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내세우며 법원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검찰이 잘못했다. 법이 잘못했다(라고 민주당이 주장한다)”며 “그냥 법을 폐지하면 그분(한 전 총리)의 죄도 없어진다”고 조소의 일침을 가했다.

제21대 국회 개원을 둘러싸고 지금까지 민주당이 보여준 행태는 의회 민주주의를 무력화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제17대 국회 이후 야당에 법사위원장을 배분하는 오랜 규범을 파괴했다. 민주당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 위해 여당이 법사위원장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자기부정이고 국민 기만이다. 2012년 야당이었던 민주통합당은 “집권 여당이 법사위를 장악하게 되면 검찰이나 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당시 우원식 민주당 원내 대변인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국회 역할을 위해 법사위원장은 야당의 것이 맞다”고 했다.

민주당이 그토록 난리를 치면서 끝까지 법사위원장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고집한 이유가 이제야 분명해졌다. 신속한 법안 처리가 목적이 아니라, 법원과 검찰을 장악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함이라는 게 명백해졌다.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는 2004년 7월 9일, 1년에 걸친 조사 끝에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관련 보고서를 공식 발표했다. 핵심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은 모두 잘못된 정보와 과장된 정보에 기반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보고서가 이목을 끈 것은 의회의 제도적 자율성과 의원들의 소신 있는 행동 때문이었다. 2004년 11월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재선에 도전한 현직 부시 대통령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보고서가 대통령이 소속돼 있는 공화당 위원장이 주도했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것은 살아 있는 능동형 의회의 전형이다. 국민의 대표인 의원은 당파적 이익이 아니라, 오직 국민과 국익(國益)을 위해 소신을 가지고 용기 있게 일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민주당 의원들은 말로는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당파적 이익에 몰입하고, 조국 전 법무장관과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등 진보 인사들을 구하기 위해선 창피한 줄도 모르고 완장을 차고 앞장섰다. 만약 민주당이 최근 법사위에서 보여준 행태가 친노 대모(代母) 격인 한 전 총리에 대한 ‘마음의 빚’ 때문이라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더구나 ‘한명숙 사건 재수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숙원 사업이고 국회가 이를 관철하려고 한다면 이는 적폐다.

최근 민주당이 법사위에서 보여준 횡포와 억지는 삼권분립·민주주의·법치주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단언컨대, 의회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은 깨어 있고 소신 있는 의원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서 나온다. “이게 국회냐”라는 성난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민주당에 제2, 제3의 금태섭이 나와야 한다. 어쨌든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은 국민이 견제하고 응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