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 셸리 케이건 지음, 김후 옮김 | 안타레스

지적능력 따른 계층차 존재…“현실 인정해야 공존” 논쟁적 주장

같은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서
동물과 사람을 동등하게 보던
단일주의적 관점에 대한 반론

도덕적 선택·복지분배 측면서
사람이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
계층주의 통해 현실이해 가능

동물에 대한 배려심의 정도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

1975년 피터 싱어가 ‘동물 해방’을 발표한 이후, 동물 학대를 금지하고 동물 복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윤리적 주장은 학계 내부의 치열한 논의를 거쳐 점차 인류 전체의 관심사로 확장돼 왔다. 이 주제를 다룬 수많은 저작물이 쏟아지고, 관련한 운동이 전 세계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에서 셸리 케이건 미국 예일대 철학과 교수는 지금까지의 ‘동물 윤리’ 담론에 대한 ‘전복적’ 접근을 시도한다. 피터 싱어 이래 현재까지, 동물 윤리는 “고통은 고통이며, 이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라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이를 피하려고 하는 한, 사람과 동물은 ‘동일한 도덕적 지위’에 놓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철학적 입장을 ‘단일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저자는 동물 윤리 분야에서 단일주의는 잘못된 길을 택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단일주의는 도덕의 문제를 인간을 넘어서 동물로 확장시키는 문제 제기에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실천 윤리 분야에서는 일종의 교착 상태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실제 현실에서 윤리가 작동하려면 상당수 사람의 공감과 이해를 얻어야 하는데, ‘단일주의’는 궁극적으로 “인간과 동물을 똑같이 헤아려야 한다”는 상식에 반하는 논리로 귀결되기 십상인 까닭이다.

예를 들어보자. 두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한쪽만 구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까. 이는 ‘도덕적 동률’ 상황에 해당하므로, 결국 동전을 던져서 한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 한 사람과 쥐 한 마리가 익사할 상황이라면, 상식적으로 답이 분명하다. 당연히 인간이다. 여러 가지 회피 논리가 있으나, 단일주의는 정의상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단일주의 입장에서는 인간과 동물을 다르게 헤아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인간과 쥐를 놓고 동전을 던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내몰리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복지의 분배 문제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복지, 즉 잘사는 삶이란 “삶의 질이 높아서 더 큰 혜택을 스스로에게 제공할 수 있는 삶”이다. 한마디로 복지는 욕구의 실현, 즉 자유의 실현 정도와 관련이 깊다. 저자는 아직 동물의 내면적 삶이나 사회적 삶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사람이 다른 동물에 비해 더 좋은 것을 누리면서 더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확실히 사람은 동물보다 깊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광범위하고 진보한 지식을 획득하고, 뚜렷하고 폭넓은 성취를 이룩하고, 고도로 발전된 심미적 감각이 있고, 규범을 반영해 살아가고, 도덕적 확신에 따라 행동하고, 성스럽고 거룩한 것을 경험하는 존재다.

단일주의에 따르면, 동물 역시 인간과 똑같이 복지를 누려야 하므로 이러한 불평등을 개선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디까지인가. 복지는 질 나쁜 삶을 사는 쪽을 도울수록 효과가 크기 때문에 고양이보다 쥐한테, 쥐보다 파리한테 자원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에 동의할 사람은 없다. 또 얼마만큼 높여야 하는가. 인간이 누리는 복지의 80%에 기준점을 둔다고 하자. 공허한 말이다. 모든 동물의 복지를 이 수준까지 높이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점에서 빠져나오려면, “사람과 동물 또는 동물과 동물 사이의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케이건은 부정적이다. 그는 “사람이 동물보다 높은 도덕적 지위에 있고,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는 걸 인정하는 ‘계층적 관점’을 도입할 때에만 동물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사람과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지적 능력’의 차이에 따라 계단식으로 정렬한다. 가장 높은 계단에 사람을, 그 아래부터 차례로 정신 능력이 높은 동물(침팬지, 돌고래, 문어), 상대 수준이 높은 동물(개, 고양이, 돼지, 앵무새), 중간 수준 동물(소, 토끼, 다람쥐), 낮은 수준 동물(조류, 어류, 파충류, 곤충류)을 배치한 후, 각각 다른 도덕적 수준을 부여한다. 한 계단 내부의 개체 간 차이는 작아서 종 내부의 차별은 없다. 계단별로는 차별이 있을 수 있으나,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건 도덕적으로 금지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수없이 ‘현실’을 강조한다. 동물을 도덕적으로 헤아려야 하지만 그 헤아림은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고,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헤아림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현실의 ‘상식’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타당한 상식의 벽에 막혀 단일주의는 동물 해방을 위한 실제 진전을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 이에 비해 계층주의는 다수의 공감과 동의를 얻을 수 있으므로 현실적 교착 상태를 돌파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인간을 중심으로 동물을 배열하는 계층주의가 상식일 수는 있으나, 동시에 차별과 학대를 불러온 원흉이 아닌가. 계단의 최상단에 있는 인간이 아래쪽 동물을 헤아릴 필요가 있을까. 저자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이제 “동물의 몫을 생각할 때”가 됐고, 동물한테 무엇을 베풀어 주느냐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는 시기가 왔다고 말한다. ‘상식’에 대해 새로운 ‘상식’을 내세우는 셈이다. 동물을 학대해 온 인류의 기나긴 역사를 생각할 때, 이 호소는 과연 작동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것이 정말 ‘상식’이 맞기는 할까. 엄밀한 논증 끝에 현실적 대안을 제시한 이 두꺼운 철학책에 설득되면서도 회의하고 또 의심하는 마음이 한쪽에서 도무지 가시지 않는다.

장은수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