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불로 밥하며 시동생까지 7남매 키우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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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 (1924∼2000)

큰딸보다 어린 시동생이 있는 탓인지 엄마는 유난히 혈육의 정과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셨다. 그래서 ‘칠남매 팔숙질’이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자라왔고, 지금도 우리는 어색하지가 않다. 그렇게 엄마는 시동생과 칠남매를 키우셨다.

팔남매의 막내로 곱게 자라서 부농으로 시집오신 엄마. 농사일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버지는 집짓기를 비롯해 여러 곳에 투자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하고 앉아서 빌려준 돈을, 서서도 돌려받지 못하게 되면서 가세는 기울었고, 아버지는 술로 자신을 망가뜨리면서 결국은 할아버지와 칠남매 팔숙질을 엄마에게 맡기고 귀천하셨다고 한다.

내 기억 속 생전의 아버지는 나를 등에 업고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급히 가면서 내 빨간 구두 한 짝을 떨어뜨린 것 외엔 어떤 추억도 없다. 아버지는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아마 아버지도 시대를 잘못 만나셨던 것 같다. 남들보다 앞서서 나가던 길이 좌절되고 병까지 얻었으니 말이다.

엄마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면서 눈물부터 핑 돈다. 환갑이라는 나이가 되니, 철이 드는 것인지 엄마가 하셨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되새기며 어느 하나 틀린 말이 없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자식을 거울처럼 생각하셨던 엄마! 자식을 둔 부모는 함부로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남에게 손가락질하면,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신을 향한다”며 함부로 남을 욕하지 말라고 하셨고, “앞에 가는 친구는 속여도 뒤에 오는 운명은 피할 수 없으니 속이지 말라”며 모든 일은 반드시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을 강조하셨다. 또 ‘지 마음 털어, 남에게 보인다’고 본인 마음대로 생각하고, 남을 속단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우리가 자랄 때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밥을 하고, 그 숯불에 찌개를 끓였다. 그래서 솥도, 냄비도 늘 그을음에 노출됐다. 그나마 냄비는 짚수세미로 닦였는데 솥은 검은 그을음을 늘 달고 있었다. 엄마는 “깨끗하지도 않은 냄비가 솥 밑을 욕한다”며 자신의 허물은 모르고 남의 허물만 들춰내지 말라고도 가르치셨다.

그래서인지 우리 칠남매 팔숙질과 그 자식들도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예의 바른 사람들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이런 많은 가르침 중에 유독 내게 해주셨던 말이 “헌 것이 있어야 새것이 있다”이다. 그러면 나는 새것이 헌것이 되지, 헌것이 어찌 새것이 되느냐고 엄마 치맛자락을 잡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엄마 치맛자락만을 잡은 게 아니라 새것을 사주지 못하는 엄마의 가슴을 후벼 팠던 철부지 행동이었음을 깨닫는다. 할 수만 있다면 엄마의 그 아픈 가슴에 연고라도 발라 드리고 싶다.

교통사고로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남은 불효한 여식 때문에 많은 속앓이를 하신 엄마. 그래도 네 자식이 살아 있고 시댁 어른은 그렇지 않으니 더 잘하라고 하신 엄마. 만사를 귀찮아하던 나에게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린 자식을 보듬어야 하지 않겠냐며 밥 먹으라고 혼내던 엄마. 허수아비 같아도 너에게 나는 엄마라며 너 역시 네 자식을 반듯하게 키워야 하지 않겠냐고 하던 엄마. 모든 부모에게 그렇듯 나 역시 엄마에게 너무나 귀한 자식이었고, 또 누구보다 아픈 자식이었다. 결혼해 어른들과 같이 살면서 시댁 생활을 하는 나에게 손으로 한 뜸 한 뜸 만들어 준 꼬장주(고쟁이),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그 꼬장주를 꺼내 보면서 ‘헌것이 있어야 새것이 있다’는 엄마의 뜻을 너무 늦게 알게 돼, 회한의 눈물로 엄마를 불러본다.

살아생전 불효한 여식! 엄마 가신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곁에 있는 것 같아 “엄마” 하고 부르면 “여기 있다”며 환하게 웃어 줄 듯한 엄마. 한 번만이라도 응답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이 아려오고 찢어지지만,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앞에 가슴만 칠 뿐.

“엄마 가시고, 우리는 생전의 뜻을 받들어 칠남매 팔숙질이 어우러져 모임도 하고, 엄마 있을 때 없었던 단톡방도 만들어 기쁘고 반가운 소식을 늘 전하고 있답니다. 어버이날이라고 꽃과 선물을 준비해 가는 사람들이 부러운 우리 남매들이지만 칠남매 팔숙질이, 전화로라도 안부를 전하면서 토닥토닥 엄마의 가르침을 잘 받들어 반듯하게 살아갈게요. 엄마!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딸 박순자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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